2019년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오랫동안 여성의 몸을 둘러싼 논쟁을 법정 밖으로 끌어낸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처벌 중심의 규범에서 벗어나, 임신·출산의 결정이 여성의 삶 전체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 결정이 실질적 변화를 이끌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법적 공백이 만들어낸 현장의 혼란이다.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률 또는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즉시 무효화하면 법적 공백이 생겨 더 큰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일정 기간 입법자에게 시한을 주고 보완하도록 하는 결정이다.
WHO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195개 나라 중에서 2/3인 131개국(67%)은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낙태를 허용한 나라 중에서도 전면 낙태를 허용한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낙태 허용 주수를 정한 ‘부분 낙태’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에서도 9개 나라만 13주 이상의 낙태를 허용하고, 53개국은 12주 이하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재판소의 결정 또한 전면 낙태는 안 되고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법을 만들라는 결정이다.
낙태죄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지만, 새로운 법과 제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시술을 제공하면서도 법적 위험을 완전히 걷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에 망설이고, 많은 여성들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지 명확한 안내조차 받기 어렵다.
‘비범죄화’는 선언됐지만, ‘안전한 접근성’은 여전히 먼 이야기다.
사회적 인식 역시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임신중지는 여전히 찬반의 이분법 속에서 소비되는 경우가 많고, 임신을 둘러싼 현실적 조건—불안정한 노동 환경, 양육 부담, 경제적 요인, 재생산 건강 교육 부족—은 논의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했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임신과 출산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 결정이 놓인 사회 구조를 함께 바라보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실제 정책 환경은 여전히 개인에게 부담을 돌리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 인프라는 제한적이고,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성·재생산 교육 역시 체계적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다. “낙태죄를 없앴으니 문제도 함께 해결됐다”는 식의 안이한 시선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착각일 것이다.
그럼에도 긍정적 변화는 있다. 무엇보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논의가 더 이상 특정 집단의 목소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을 당사자 중심에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가져온 중요한 사회적 파장이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헌법재판소는 국가에 분명한 과제를 부여했다.
임신중지의 허용 범위를 합리적으로 규정하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며, 여성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제도를 마련하라는 주문이었다.
이는 단지 처벌을 없애는 문제를 넘어, 안전한 재생산 건강권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선 우리는 아직 완주와는 거리가 멀다. 법이 바뀌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제도와 사회적 환경 역시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으려면, 선택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문제를 다시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오고, 책임 있는 입법과 정책으로 응답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를 현실에서 완성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