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은 더 이상 교양 강좌의 부드러운 주제나 한가한 캠페인 구호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이고 절박한 국가적 생존 과제다.
거리와 공장, 교실과 농촌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이미 완전히 바뀌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 수는 250만 명을 넘어섰다.
인구 절벽의 직격탄을 맞은 지방 도시와 생산 현장은 이제 이주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없이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 엄연한 변화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언젠가 다뤄야 할 나중의 문제’로 미뤄두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다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 편향과 오만에 갇혀 있다.
첫째는 ‘시혜적 동정론’이고, 둘째는 ‘선택적 배척주의’다.
우리는 다문화가족과 이주민을 동등한 사회적 동반자로 보기보다, 동화시켜야 할 ‘미숙한 존재’나 도움을 베풀어야 할 ‘시혜의 대상’으로 규정하곤 한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식문화를 따르며, 단일민족의 틀 안에 군말 없이 적응할 때만 ‘모범적인 이주민’으로 칭찬하는 강요된 동화주의가 작동한다.
더 심각한 것은 출신 국가와 인종, 경제적 계급에 따라 다문화를 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선별적 태도다.
서구 선진국 출신의 외국인에게는 친절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개발도상국 출신의 이주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에게는 묘한 우월감과 편견의 시선을 보낸다.
그들을 ‘필요할 때 쓰고 쓰는 저임금 노동력’으로만 취급할 뿐, 우리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이러한 이중잣대와 얕은 포용성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의 다문화 복지와 관련 정책들 역시 이제 솔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지원이 ‘한국 문화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는 시혜’나 ‘불쌍하니 거두어주는 복지’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는가. 이주민을 동화와 시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온정주의적 접근은 이미 명백한 한계에 다다랐다.
그들을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시혜 받는 이방인’으로 경계 짓는 한,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사회적 비용만 천문학적으로 증폭될 뿐이다.
바야흐로 선의와 동정에 기대는 단순 복지 수준을 넘어, 제도와 인식 전반의 담대한 대전환을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
첫째, 적응의 강요를 끝내고, 이주민을 ‘사회적 자산’으로 적극 인정해야 한다.
단일문화라는 낡고 좁은 틀에 이주민을 강제로 맞춰 넣으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이들이 가지고 온 문화적 다양성과 언어적 역량, 글로벌 네트워크는 정체된 대한민국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강력한 자산이다.
결핍을 겨우 채워주는 소극적 복지를 탈피하여, 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투자형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이주민을 복지의 수혜자에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회적 주체’로 세워야 한다.
언제까지 이들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만 묶어둘 것인가.
행정, 교육, 지역 공동체 운영 등 삶의 터전 곳곳에서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책임을 다하는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문턱을 대폭 낮춰야 한다.
주체성이 결여된 일방적 복지는 지원을 받는 이에게도, 세금을 부담하는 기존 주민에게도 소외감과 피로감만 남길 뿐이다.
셋째,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쌍방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다문화 정책의 진짜 성패는 이주민이 아닌 ‘기존 주민들의 수용성’에 달려 있다.
여전히 사회 구석구석에 팽배한 차별과 편견을 방치한 채 이주민에게만 적응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인종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생활 밀착형 다문화 수용성 교육을 확대하는 등 사회 전체의 시선을 개조하는 일에 공격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소멸해 가는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는 선택이나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포용하여 함께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편견 속에 고립되어 같이 침몰할 것인가의 문제다.
“다문화 시대가 오고 있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 엄중하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 변화는 우리에게 축복이 아닌 커다란 사회적 혼란과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 시혜적 동정과 선택적 배척을 단호히 거두고, 공존을 위한 당당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