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소망, 태극기에 실려 펄럭이다

1883년 공식적인 국기로 제정되어 일제강점기에 탄압을 받는 순간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 가슴에 품고 손에 들었던 우리의 태극기. 여기에는 애달프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순간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지금의 형태로 통일되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국민의 소망을 소중히 품어온 태극기의 굳은 의지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에서 살펴본다.

한국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1945년│등록문화재 제389호│독립기념관
한국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1945년│등록문화재 제389호│독립기념관

자주독립국가임을 세계에 알린 태극기

우리나라는 구한말 서구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국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1883년 3월 6일 고종이 김홍집(1842-1896) 총리대신의 제안을 바탕으로 조선의 국기를 제정하기까지 태극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설은 분분하나, 1882년 9월 박영효가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갈 때 처음으로 태극 문양과 4괘가 있는 국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1882년 발행된 미국 해군의 『세계 해양국가 국기도감(Flags of Maritime Nations)』에 조선을 상징하는 공식적인 국기로서 태극기가 등장했다. 중국의 황룡기 옆에 ‘COREA’라는 국가명으로 태극기가 실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1900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태극기는 당당하게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비단, 놋그릇, 도자기, 칠보 등 다양한 전통문화가 전시된 만국박람회의 대한제국관을 묘사한 프랑스 잡지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은 태극기를 페이지 오른쪽 위에 명확하게 게재했다.

세계 해양국가 국기도감│1889년(좌) /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1900년(우)
세계 해양국가 국기도감 1889년.(좌) /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1900년.(우)

일제의 억압에도 꿋꿋이 피어난 저항 정신

ㅇㄹㄴㅇㄹ
태극기 목판 1919년│등록문화재 제385호│독립기념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였던 서재필(1864-1951) 박사가 1896년 4월 7일에 창간한 ‘독립신문’의 제호에는 항상 태극기가 함께 인쇄되었다. 어려웠던 시절 독자들에게 단결과 통합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태극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발행될 때마다 그 모양이 달랐다. 독립신문뿐만 아니라 민족 독립 정신을 앞세워 발행된 ‘황성신문’에서도 태극기를 확인할 수 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외교권을 박탈당하면서 조선과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는 일제에 의해 내려지게 되었다. 일제의 침략이 거세질수록 태극기가 지닌 민족 독립의 의미는 더욱 커져갔고 그만큼 탄압도 심해졌다.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진 1910년에 공식적으로 태극기 사용과 소지가 금지됐지만, 1919년 3·1 운동 당시에는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기 위한 ‘태극기 목판(등록문화재 제385호)’이 제작되어 지역의 거리마다 태극기가 일시에 뿌려지기도 했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학생과 시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만세 운동은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독립신문 1899년│국립중앙박문관(좌) / 황성신문 1898년(우)
독립신문 1899년.(사진=국립중앙박물관)(좌) / 황성신문 1898년.(우)

해외에서도 불타오른 독립을 향한 열망

독립운동의 열기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도 끓어올랐다. 중국의 광복군 제3지대 2지구대에서 활동했던 문웅명은 1945년 2월경 광복군 동료에게 태극기를 선물 받았는데, 여기에는 동료 대원들이 적은 글귀들로 빼곡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료와 헤어지는 아쉬움과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태극기를 제작했는데, 오늘날 미국에서 진행된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김구 선생은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벨기에 출신 미우스 오그 신부를 통해 미국의 한인 교포들에게 망국의 설움을 면하고,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는 내용이 적힌 태극기를 보내기도 했다.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애국을 상징했던 태극기의 정신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15일, 조선의 국기·대한제국의 국기·상해임시정부의 태극기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정식 국기가 제정되었다.

ㅇㄹ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1923년│등록문화재 제395호│이군옥
ㅇㄹㄴㅇㄹ
김구 서명문 태극기 1941년│등록문화재 제388호│독립기념관
미국에서 사용한 대한독립만세 태극기│1930-1940년│등록문화재 제387호│독립기념관
미국에서 사용한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1930-1940년│등록문화재 제387호│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