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목사 부부가 여중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11개월이나 방안에 방치한 사건이 일어났다.
친부는 여중생 딸이 숨진 뒤 14일 후에야 경찰에 허위 가출 신고를 한 뒤 신학교에서 강의를 계속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숨진 여중생은 친부와 계모에게는 물론, 계모의 여동생 집을 전전하면서 지속적인 폭행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뜯어보면 지난달 초등생 자녀를 때려 숨지게 한 뒤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적발된 사건과 판박이 임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느 순간에서도 마지막 안식처나 피난처가 되어야할 가정이 폭력 및 학대, 심지어는 살인 및 시신유기 장소로 전락할 수 있음을 또 한 번 보여준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부모는 친엄마를 암으로 잃고 방황했을 딸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가출벽이 있다며 구타 숨지게 했다. 중학교 1학년이면 아직 아이다.
아이가 스스로 법에 호소할 줄 알 리 없고, 누가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는 한 전문가가 아동학대를 발견하고 신고할 리 없다.
소녀의 상처를 알아보고 껴안아 줄 사람은 결국 학교 교사뿐이다.
생전에 갈 곳도 마음 붙일 사람도 없었던 아이가 작년 3월 가출해 찾아간 사람도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소녀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3월 17일 중학교로 전화해 전날 소녀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고 했다.
3월 15일 가출 직후 만났던 친구 눈에 띄였던 종아리와 손의 멍든 자국을 왜 교사는 눈여겨보지 않았는지 안타깝다.
그 때 그 아이를 아도보호기관에 맡겼더라면 해당 중학교도 초등학교 교사의 연락을 받은 즉시 아이를 찾아 보호에 나섰더라면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녀는 부모에게 돌려보내진 하루 뒤 피멍 든 시신이 되고 말았다. 중학교는 작년 3월 말 두 차례 출석 독려서를 보냈다. 하지만 독일 박사 출신의 신학대 교수인 아버지가
“잘 지낼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자 교사도 경찰도 발길을 돌렸다.
만약 학교나 경찰이 여중생의 집을 한번만이라도 방문했다면 사건은 조기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출석을 독촉한 후에도 무단결석이 7일 이상 지속되면 학교 측이 교육장에게 통보하게 돼 있다.
그러나 소녀가 입학했던 중학교는 부천 교육지원청에 알리지 않았다. 학교와 교육청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교육법 시행령도 학교와 교육청이 따르지 않는 현실에서 정부가 재작년 마련한 아동 학대 예방 종합대책이나 올해 만든 장기결석 아동 관리 매뉴얼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이번 사건은 가정 내 폭력에 대한 사회 공동체의 암묵적인 방관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81.9%가 부모이고 학대 장소의 85.9%가 가정이라는 통계가 엄연히 있다.
이런 폭력이 가능한 것은 가정이 부모와 가장이 쳐놓은 치외 법권 지역이라는 관념이 은연중 사회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훈육이라며 손을 댔던 것이 차츰 상습폭력이 되고, 급기야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지난해 12월 인천의 11살 여아가 ‘맨발 탈출’로 가정폭력을 고발하고 그 여파로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두 건의 사건도 영영 미궁으로 끝났을 것이다.
남의 가정 일이라며 누구도 관여하지 않았으니 사회 전체가 공범이라 할 수 있다. 폭력을 당한 아이는 훗날 똑같은 폭력을 저지르는 폭력의 대물림을 하게 된다.
이같이 다른 세대에게 유전되는 가정 폭력을 막으려면 당장 나서야 한다. 공부는 학원에 맡기고 인성교육은 가정에 맡긴다면 학교는 대체 뭐하는 곳인지 학교와 교사만이라도 부모의 손찌검을 피하려는 아이들의 피난처와 지킴이가 돼줘야 한다.
무엇보다 자식을 인격체가 미완의 존재 즉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하고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신고의무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