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봉사상 영광의 얼굴들] 본상, 이성숙 팀장 /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공직자

꿈나무 어린이부터 사할린 교포까지…동네소식지 발간·희망도우미사업 개설

“봉사라는 것은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어려운 사람이 힘들 때 말이라도 들어주고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주면 되는 거예요.”

서울시 강서구 등촌3동에서 근무하는 이성숙(57세·6급) 사회복지사가 최근 제40회 청백봉사상 본상을 받았다.

이성숙 사회복지사(가운데)가 제40회 청백봉사상을 받고 있다.
이성숙 사회복지사(가운데)가 제40회 청백봉사상 본상을 받고 있다.

이 팀장은 주민이 직접 추천한 경우라서 의미를 더한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이렇게 상을 받게 돼 부끄럽습니다. 주민을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하라고 주신 상이 아닌가 싶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소감을 밝혔다. 그녀는 25년간 사회복지사로서 다양한 공적을 남겼다.꿈나무 어린이교실 프로그램

1991년 이 팀장이 강서구에 첫 발령이 났을 당시 가양1동은 논, 밭 위주로 된 민속촌 같은 곳이었다. 학교는 양천초등학교, 양천향교 달랑 2개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공부에 대한 관심은 컸으나 우리나라 전통의 민속마당, 문예 프로그램 등은 도외시해 많이 잊혀져 가고 있었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 결과, 그녀는 양천향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꿈나무 어린이교실 프로그램을 만들어 추진하게 됐다.

꿈나무 어린이교실은 양천향교 훈장님이 우리 성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민속마당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미니 올림픽을 통한 협동심 기르기, 지역 문화재 탐방, 환경을 위한 비누 만들기 등이 있다.

“참가비 5000원을 받았음에도 처음 모집하고 1시간도 안 돼 80명 마감이 됐어요. 처음에는 한 번 시행해보고 평가를 해보자 했는데 반응이 좋아 3개월 과정으로 3년 동안 진행했습니다”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저소득층 자녀 장학생 장학금 지원

등촌3동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주거 안정 차원에서 이사를 오다 보니 영구임대아파트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이 팀장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동네소식지’를 발간했다.

이 주무관은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이 팀장은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동네소식지’에 담아 장학사업, 우유사업, 야쿠르트 사업 등을 진행했다.

“저소득층 같은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소식지에 올려서 청소년 장학사업, 사할린 동포 우유 사업, 독거노인을 위한 아쿠르트 사업, 장애인을 위한 수화교실, 교복·참고서 물려주기 사업, 무료로 과외 지도하기 등으로 지원해 드렸습니다”라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흑백 동네소식지를 보여줬다.거동불능 홀몸노인 및 장애인 희망도우미사업

이 팀장이 2005년 방화1동으로 발령 났을 때, 젊은 어머니들이 취로 사업을 하며 자활근로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자활근로자를 활용해 2인 1조로 홀몸노인을 도와주는 사업을 했다.

“자활근로자들도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빨래와 안마를 해드리고 말벗도 되어 드리면서 친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도움을 받아 고맙고 어머니들은 일하면서 보람을 느껴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 주는 사업이었습니다.”

한 번은 치매 증세가 있었던 홀몸노인이 있었다. 평소 치매 증세가 있는지 몰랐는데 희망도우미가 방문하면서 치매를 미리 발견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한 분은 건강상 오래 살 수가 없어 임종을 지켜봐야 할 상황이 있었다. 평소 가족과 연락이 안 됐는데 희망도우미사업을 하면서 수소문 끝에 가족이 노인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게 도와드렸다.

그녀가 그곳을 떠나면서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했지만, 현재는 요양보호사사업과 활동보조인사업이 생겼다. 이 팀장은 예전에는 그런 사업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희망도우미사업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어 뿌듯해했다.

사할린 영주 귀국자 어울림 프로젝트

그녀는 올해 구청에서 공모하는 사업에 지원해 최우수 사업으로 선정돼 상금 200만 원을 받았다. 현재 등촌3동에 거주하는 사할린 동포는 58명. “4단지에 28명, 9단지에 30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한 번도 서로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며 사업 취지를 말했다.

사할린 동포는 일제강점기 후반 일본의 강제노역에 의해 사할린으로 거주하며 가족을 이룬 동포를 말한다. 이들은 아직 러시아어(사할린어)를 사용하고 있고 사회주의에서 오래 사셔서 기존의 노인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아 교류가 없었다.

등촌3동에 거주하는 사할린 동포 58명을 위해
등촌3동에 거주하는 사할린 교포 58명을 위해 ‘사할린 영주 귀국자 어울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경인 아라뱃길 관광 때의 모습.

이 팀장은 사할린 어르신들이 국내에 잘 적응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이번 사업을 통해 첫 만남을 주선했다. “천연비누를 만드는 프로그램과 경인 아라뱃길 관광을 통해 4, 9단지 사할린 어르신들이 한 데 모일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셔서 앞으로 만남을 연 2회 주선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복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팀장에게 사회복지사로서 신조를 물었다. 그녀는 “특별히 신조라기보다 복지라는 것이 사람이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라며 자신이 사회복지사지만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나 싶다며 자신의 공로 앞에서 겸손했다. “인연이 되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을 뿐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말이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준 것뿐인데 자립자활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이성숙 주무관
이성숙 주무관

2007년 이 팀장이 등촌3동에 왔을 때 자살위기에 있었던 어머니가 있었다. 이혼하는 조건으로 남편이 아이를 양육하기로 했는데 한 달 만에 아이 셋을 놔두고 도망갔다. 게다가 건강하지 못한 어머니까지 모시고 살게 돼 너무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이 팀장은 어머니가 쓰러진 것을 보고 긴급지원 300만 원을 해주면서 인연이 돼 지금은 언니 동생처럼 지내고 있다. “딸 셋의 진로문제와 인생상담도 하면서 도와줬습니다. 지금은 세 딸이 회계사 사무실, 미용사, 간호사로 자립해 잘살고 있고 가끔 찾아오면 오히려 더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라며 몇 마디 해준 거 밖에 없는데, 그것을 힘으로 삼아 잘 지내는 거 보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정년을 앞두고 올 7월 자원해 다시 등촌3동으로 왔다. “보통 같으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조용한 데 편안하게 있을 수 있지만, 사회복지사로서 편한 곳보다는 센 동네에 가서 마지막 봉사를 해보자는 마음에 등촌 3동에 다시 오게 됐습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으면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리고 싶습니다”라며 포부를 말했다. 등촌3동은 양천구 수급자와 맞먹을 정도로 서울시에서 수급자가 가장 많은 동네다.

“공직 생활이 2년 남았습니다. 2년 뒤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라면서 “특히 주민 추천으로 청백봉사상을 받은 만큼 지역주민을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