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에 가고 인공지능(AI)를 만들어도 우리 몸은 석기시대를 헤매고 있다.
200만년 동안 인류는 동물을 사냥하거나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고기를 먹어 영양분을 섭취했다.
육류가 부족할 땐 열매와 뿌리를 먹었다. 단맛은 과일이 유일했고 그나마 구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다 수렴채집 생활을 하던 구석기시대 인류는 농업혁명 이후의 인류보다 훨씬 건강하고 평균수명도 길었다.고 화제작 ‘사피엔스’에서 저자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달콤함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 돼 있다. 달콤한 걸 먹으면 배도 부르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인류가 과일이나 꿀 말고 달콤한 성분을 따로 분리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2,500여 년 전 인류는 사탕수수에서 조당(정제하지 않은 설탕)을 얻을 수 있었지만 설탕은 황금만큼 귀했다.
1세기 전만 해도 설탕은 부자나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었고 일반 가정의 설탕 통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제는 설탕이 물처럼 흔해지고 싸지면서 시작됐다. 단맛은 뇌의 쾌락중추를 자극해 기분을 좋게 하는 새로토닌을 분비시킨다.
절반 이상의 여성이 섹스보다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달콤함의 대가는 상상 이상이었다.
대사증후군의, 심혈관 질환, 비만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설탕은 만병의 근원이 됐다.
더욱이 설탕은 담배나 알코올처럼 중독성이 있어 끊기가 어렵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것이 당기고 단것을 끊어서 두통 짜증 우울감 등이 밀려들면 중독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식품의약국(EDA)은 설탕 등 당분 섭취량이 하루 열량의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고 권고한다.
그 기준으로 볼 때 대다수의 한국인은 중독이다. 2013년 한국인의 당류 섭취량은 하루 평균 72.1g 총열량의 14.7%를 설탕에서 얻고 있다.
하지만 설탕의 달콤한 유혹에는 어두운 역사가 숨어 있다.
유럽인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아프리카 노예사냥이 그것이다.
16-17세기 사이 카리브해의 브라질, 미국 남부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간 흑인노예는 자그마치 1000만명이었다. 한창 일 할 나이에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아프리카 대륙은 성장 동력을 잃었다.
아프리카에서 지금까지 굶주림이 대물림되는 근본원인이다. 풍토병과 중노동으로 죽어간 노예도 부지기수였다. 1791년 영국의 폭스는 “설탕 1온스(28g)는 인간의 살 2온스와 같다”면서 카리브산 설탕 불매운동을 펼친다. ‘공정무역 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미 중독된 설탕의 유혹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불급이었다.
6-7세기 인도 동부 뱅골인들은 짠 사탕수수에서 채취한 당즙을 조려내어 결정체를 만들었다. 이 정제 설탕은 삽시간에 세계 각지로 퍼졌다.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1788-1856)까지 ‘점입가경의 맛“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설탕은 만병통치약으로도 여겨졌다.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단식 중에 설탕을 먹는 것이 율법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벌어지자 설탕은 식품이 아니라 소화촉진용 약품이라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차와 커피, 담배 같은 유럽 대륙에 유입된 다른 식품들은 건강상 논란을 일으켰다.
폭스 이후 200년이 지난 지금도 “설탕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무슨 노예해방을 앞세울 거창한 운동도 아니다. 비만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의 부범인 설탕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당뇨병 혹은 당뇨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이 무려 940만명이라니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국민은 가공식품 중 주로 탄산음료, 빵, 과자, 떡에서 당류를 섭취하고 있다.
가공식품에서 당류 섭취량이 하루 열량의 10%를 초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 위험이 39%, 고혈압은 66%, 당뇨병은 41% 높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가공식품 영양표시부터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