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이 오면 생각나는 전우

원사 전 해 춘
국제평화지원단

“그대 왜 거기에 섰나! 한 뼘 가슴 속엔 백두산만한 심장이 뛰고 다섯자 몸뚱이 속엔 압록강만한 혈관이 흘러 거기에서 조국애의 사랑이 불타 오르지 않던가. 다시 한번 물어본다. 그대 왜 거기에 섰나! (중략) 내 생명 조국과 함께 하려고 나 이곳에 와 섰노라고.”

– 이은상, ‘그대 왜 거기에 섰나’

노산 이은상 시인의 이 시는 군복입은 우리 군인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우리 부대에도 조국애를 가슴에 품고 스무 살,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친 선배 전우들이 있다.

고(故) 소령 김광석, 고 상사 이수봉, 고 중사 한오환, 고 중사 이광암, 고 중사 전해경, 고 중사 오수남.

1998년 4월 1일 충북 영동군 요화면 소재 민주지산(1249m) 정상 부근에서 5공수여단 (現국제평화지원단 전신) 23대대는 천리행군 중 갑자기 몰아닥친 폭설 및 기온 급강하로 김광석 소령 등 6명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특히, 6명의 순직자 중 같은 중대원이었던 고 이수봉 상사와 친척이었던 고 전해경 중사는 나에게 더 특별한 전우였다. 그날 이후, 이들을 포함한 6명의 전우들을 나는 가슴 깊은 곳에 묻어야만 했다.

천리행군은 특전사를 상징하는 엄청난 작전이자 훈련이다. 1974년 특전사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적 후방에 투하된 특전대원들이 임무를 완수한 후 적진에서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하는 고강도의 실전적 훈련이다. 특히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험준한 산지도 행군 코스에 포함되었다. 그렇게 선택된 곳이 바로 민주지산이다.

당시 민주지산은 영하 30도의 한파와 초속 30m이상의 강풍이 몰아쳤고, 눈이 30cm 이상 쌓여 이동마저 어려웠다. 4월 기상이 이렇게 급변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기상예보도 비가 온다는 예보 말고는 없었다. 이후 라니냐와 엘니뇨 현상으로 판명된 기상 이변은 대대 행군병력 전원을 집어삼킬 정도로 극한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전우애를 발휘해 희생을 최소화한 이 여섯 특전용사의 넋을 위로하고자 민·관·군이 협업하여 충북 영동군에 민주지산 충혼탑을 세웠다. 또한,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는 매년 유가족들을 모시고 추모행사를 하고 단에서는 전입 간부들에게 민주지산 충혼탑 참배를 정례화해 선배 전우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뜨거운 조국애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 사고 이후 전군에는 기능성 고어텍스 피복과 방수·방한 전투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전투원들의 임무와 특성을 고려한 소재는 물론, 기능과 모양 등 피복 체계의 획기적인 변화와 함께 ‘안전 감수성’에 대한 인식 개선이 진척됐다. 또한, 이들이 보여준 불굴의 군인정신과 전우애는 후배 전우들에게 귀감이 되어 군내 교육 소재로 다뤄졌다. 이는 이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숙제가 하나 남아있다. 6명의 전우 모두 국가유공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한 전우들이 있다. 민주지산에서 순직한 전우들의 26주기가 되는 2024년!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이 더욱 빛을 볼 수 있도록 서훈 건의가 하루빨리 수용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우들의 혼이 서려있는, 가슴 아린 민주지산 기슭에는 노란 꽃다지가 등산객을 반긴다. 끝내 지키고 싶었던 조국의 품속에서 눈을 감은 6명의 전우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들의 넋을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