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경향신문 화보 속 원미경은 시대의 얼굴이었다.
2025년의 그는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속 닭내장탕집 사장 ‘현상월’ 역으로 새로운 존재감을 선보인다.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불친절한 장사꾼이자, 생의 굴곡을 얼굴에 새긴 여인. 원미경은 이 고단한 인물을 놀라울 만큼 현실감 있게 연기하며, 험궂은 눈가 주름마저도 감동으로 바꿔낸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원미경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최정상 여배우’의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차화연, 이미숙, 이보희와 함께 당시 여성 캐릭터 서사의 중심에 있었고, 특히 정통 멜로 장르에서는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품격과 절제를 겸비한 이미지, 그리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내공 있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 미덕은 지금도 유효하다.
원미경의 연기 변신은 MBC 〈원더풀월드〉에서도 이미 예견됐다. 김남주의 모친 역에서 치매를 앓는 노인 역을 맡아 ‘트로이카 여배우’라는 영광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지는 용기를 보여준 바 있다. 과거의 화려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얼굴을 찾아 나서는 그 행보는 천상 배우의 길이다.
〈미지의 서울〉 중 원미경© 경향신문
현재 방영 중인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그는 굴곡진 인생사로 남의 인생을 살아가는 ‘현상월’ 역으로 출연 중이다. 지난 회차에서 그는 슬픔, 연민, 사랑과 체념이 겹겹이 엉켜있는 인생사를 긴 독백으로 풀어내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1984년도 경향신문 사진자료.© 경향신문
1978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원미경은 시대극부터 현대극, 영화와 무대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활동해왔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빙점 81〉 같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작품은 물론 〈사랑과 진실〉 〈행복한 여자〉 〈사랑의 종말〉 등 국민 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종상에서 연기상을 거머쥔 ‘흥행 보증’ 배우였다.
1984년도 경향신문 사진자료© 경향신문
그의 진짜 힘은 긴 공백을 지나서도 여전히 ‘지금 이 순간의 인물’을 생생하게 창조해낸다는 데 있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원미경은 화려한 장치나 극적인 반전을 빌리지 않는다. 대신, 조용한 숨결 하나, 시선의 결 하나로도 인물의 내면 깊숙이 다가선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의 단면을 통해 그는 오히려 더 특별한 진실을 길어 올린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무게들을 부드럽게 떠올린다.
배우로 살아온 수십 년, 원미경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머문다.
<출처 스포츠경향>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