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신화” 막장 드라마

 

 

나경택/본지 논설고문 칭찬합시다운동 중앙회 회장
나경택/본지 논설고문
칭찬합시다운동 중앙회 회장

로봇청소기 ‘클링클링’은 맛 벌이 부부나 초보 주부에게 인기 높은 혼수 필수품이었다. 이 제품을 만든 회사는 모뉴엘이다. 홈시어터, PC 등으로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최고 혁신상을 여러개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안자 빌게이츠가 “이 기업을 주목하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촉망받던 기업이 느닷없이 기업회생정차(법정관리)를 신청해 금융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2004년 설립된 모뉴엘은 삼성전자 북미 판매왕이었던 박홍석 대표가 맡으면서 공격적 마케팅으로 덩치를 키웠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런 회사가 갑자기 은행 차입금을 갚지 못했다며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한 뒤 심사 과정에서 수출 서류를 위조해 불법 대출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10개 은행의 대출 잔액 6,789억원은 대부분 떼일 개연성이 높다.

올해 초 KT PNS 사태에 이어 최악의 사기 대출 사건이란 말이 나온다.

모뉴엘은 박 대표가 지분 94.7%를 가진 비상장 회사다.

박 대표는 기업회생절차 신청 직후 종적을 감춰 비난을 받았다. 회사가 속 빈 강정이 됐을 지난해 66억원의 배당을 받아 ‘먹튀’논란도 일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마크힐스는 3.3제곱미터당 1억원이 넘는 전국 최고가 아파트다. 회사 돈으로 구입해 본인이 살았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국내외에서 찬사를 받던 벤처기업가가 사실은 불법과 사기의 달인이었다니 뒷맛이 씁쓸하다.

공기업과 국책은행들도 한심하다. 보증을 해 준 무역보험 공사나 대출을 해 준 은행들은 모뉴엘의 서류만 믿고 아무런 점검도 하지 않았다.

모뉴엘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우리은행이 현금 흐름을 수상히 여겨 지난 해 대출을 모두 회수한 것과 비교된다.

특히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같은 국책은행들이 돈이 많이 물렸다.

국민 세금을 지원 받는 국책은행들이 주로 호구였던 셈이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모뉴엘의 대규모 부실대출이 드러나자 금융감독원은 뒤늦게 관련 금융회사들을 대상으로 긴급 특별감사에 들어갔고, 검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뒷북 검사와 뒷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모뉴엘의 사기행각 조짐은 거의 1년 전부터 포착됐었다. 대출액 전부에 해당하는 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형적인 자금조달 행태나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회사에서 실제로 영업활동으로 들어 온 현금 유입액이 고작 15억원에 불과한 비정상적인 재무구조를 보면 단번에 이상 징후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은 이런 이상 징후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단 한번도 수출 여부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서류만 보고 거액의 대출금을 선 뜻 내준 채 제대로 사 후 관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라고 부실이 표면화되자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위험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국정감사서 답변을 통해 ‘검사 결과를 보고 제도 개선을 협의하겠다.’고 했다. 지난 2월 드러난 KT 자회사와 협력업체의 거액 사기대출 이후에도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이런 부실한 리스크 관리와 금융감독 방식을 확 뜯어 고치지 않고서는 후진적인 금융 부실사고는 언제든지 재연 될 수 밖에 없다. 금융권은 제2, 제3의 모뉴엘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감독 당국은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리스크 관리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더 황당한 것은 속수무책으로 놀아 난 정부와 금융당국이다. 근거 없는 수출 실적만 보고 ‘히든 챔피언’이라는 보증서를 발급한 정부나 수출서류 한 장에 수조원을 빌려 준 금융사는 사기 방조법이나 다름없다. 수출기업이라면 못 쓰는 장부의 그릇된 행태가 빚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