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피트 주한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한 뒤 선혈이 낭자한 채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ㆍ미 수교 133년 만에 최악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대사가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반인륜적 범죄의 표적이 된 데 대해 국민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미연에 테러를 방지하지 못한 것이나 사고 이후의 미숙한 대응에도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테러를 당한 리피트대사는 봉합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우리마당 독도지킴이라는 단체의 대표인 김기종(55)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리퍼트 대사는 오른쪽 얼굴 광대뼈에서 아래턱까지 길이 11cm에 깊이 3cm나 되는 부상을 입어 80여 바늘을 꿰매야 했다.
“조금만 상처가 깊었으면 생명에 위협을 줄 수도 있었다”는 의료진의 설명에 아찔함을 느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처럼 이번 테러는 리퍼트 대사 개인의 신체뿐 아니라 한ㆍ미동맹을 향한 공격이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피의자 및 경비 책임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치, 이를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테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야 이번 비극적 테러를 딛고 한ㆍ미 동맹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다. 김씨는 범행 현장에서 거듭 “전쟁 훈련 반대”라고 소리쳤고 경찰에 체포된 뒤에는 “미국 놈들 혼내주려고 대사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념을 위해 남을 해친 이번 테러는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야만적 범죄행위다.
키리졸브에 불만을 품은 그가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조해 칼을 휘두른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을 규탄하는 남녘 민심의 반영이고 항거의 표시”라는 고약한 논평을 했다. 여덟차례 북한을 방문한 경력이 있는 김씨는 자발적으로 테러를 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과 연계된 배후세력이 있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김씨는 5년 전 주한 일본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위험인물이다. 행사를 주최한 민화협 회원이지만 참석 통보를 하지 않아 현장에서 손으로 쓴 이름표를 달고 입장했다. 그를 방치해 테러를 예방하지 못한 것은 경찰의 중대한 실수다.
미국 대사관에서 경호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외교관의 신변 보호는 주재국의 당연한 임무이다. 지난해 10월 부임한 리퍼트 대사는 덕수궁 옆 관저에서 세종로 대사관까지 걸어서 출근하면서 만나는 시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소탈한 행보를 보였다.
올해 1월 서울에서 태어난 첫 아들의 중간 이름을 “세준”으로 지었던 그다.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섰던 리퍼트 대사가 테러를 당한 것에 국민들은 내 이웃의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야만적 테러를 규탄하고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네티즌들의 글이 인터넷과 SNS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괴한의 습격으로 피를 흘리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리퍼트 대사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수술 후에는 한국인들의 지지와 성원에 오히려 감사하며 한글로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주미 대사로 지난해 10월 말 부임한 리퍼트 대사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와 음식을 접하며 한국인들 속으로 파고드는 정력적인 공공외교를 펼쳐왔다.
이번 사건으로 리퍼트 대사는 한국인들과 더욱 끈끈하게 맺어지고 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미국 대사 테러 사건을 계기로 대테러 대책을 원점부터 재검토해 누구도 빠져나가기 힘들 만큼 촘촘하게 사전, 사후 대책의 그물망을 다시 짜야 한다. 야당도 “안보 문제에 대해선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