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의 젊은이가 쉰을 넘어 초로에 접어들었다. 홍안이던 얼굴에는 병색이 깃들었다. 한 인간의 영혼이 송두리째 짓밟히고 양심이 무참하게 모욕당했다.
깊고 끈질긴 투쟁 끝에 진실을 되찾았다고 하나 잃어버린 그의 인생은 누가 되돌려줄 건가?
“사필귀정”이란 말로 치환하기엔 모진 세월이 안타깝다.
‘한국판 드레퓌시’로 불러 온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91년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간부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해다는 혐의(자살 방조)로 기소된 지 24년만이다.
대법원은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립 과학수사연구원 필적 감정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강씨의 변호사가 지적했듯 ‘유서대필 사건’이 아니라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불의한 권력이 빚어 낸 오욕의 과거사를 사법부가 바로 잡은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권고에 따라 강씨가 재심을 청구한 것이 2008년이다. 서울고법이 2009년 9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하자 검찰은 곧바로 대법원에 항고했다.
대법원은 재심 개시를 확정하기까지 또 3년여를 흘려보냈다.
검찰은 재심과정에서도 강씨의 유죄를 주장했고,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한 뒤에는 상고를 강행했다.
그 사이 강씨는 간암 수술을 받고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 왔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인 강씨에게 검찰과 법원이 ‘2차 가해’를 저지른 격이다.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강씨의 무죄가 확정됐는데도 어느 한 사람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1년 당시 수사 검사들은 “시대에 따라 증거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다르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유서대필이 24년 전에는 ‘사실’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사실’이 아닌 쪽으로 변했다는 말인가!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이토록 들어맞기도 어려울 터이다.
대법원 역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고만 했을 뿐 잘못 된 판결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최고 법원의 품격이 이 정도라니 참담하다.
강씨 사건은 과거 군부정권 시절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유서대필사건”이 아니라 “유서대필조작사건”으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
다시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했던 검찰과 사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검찰은 상식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고 결정적 증거도 없는 사건을 무리하게 기소한 것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국가 폭력과 사건 조작에 의한 개인의 희생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상황 논리와 조직보호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 준칙 등에 대한 입장을 내 놓을 필요가 있다.
사법부도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부당한 국가 권력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 상황에서 진솔한 반성과 사죄가 없으면 판결의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정부도 자살방조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24년간 고통의 세월을 보낸 강씨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보상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 중인 강씨는 지병을 앓고 있다.
국가 권력에 짓밟힌 강씨의 인생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치유 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한 시민의 삶을 무너뜨린 조작주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과 법원을 비롯해 관련 기관인사들이 자성하고 사과해야 함은 물론이다.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국가폭력이란 괴물이 언젠가 다시 살아나 또 다른 시민의 삶을 파괴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