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에서 韓日 朝日 關係의 現況과 展望

조일 한일관계

 

2015년 6월 9일 FPCJ 회견실에서 矢野씨 사회와 石田씨 통역으로 日本의 慶應大學 法學部 政治學科 准敎授 西野純也씨의 韓日, 朝日관계의 현상과 전망에 대한브리핑이 있었다.

矢野씨는 다가오는 6월 22일 日韓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이한다.며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의 진전을 日韓수뇌 회담 개최의 전제 조건으로 하여 대통령의 전략으로 비판이 나오는 중 금월 초순에는 역사문제와 그 외의 문제를 나누어 대응 할 방침을 처음으로 밝히는 중 한일 수뇌회담 개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또한 조선에 대해서는 작년 7월 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의 재조사 개시로부터 1년을 맞이 하는 때 그 행방이 집중되는 가운데 “日韓 日朝관계 현상과 전망”에 대해 듣기로 하자며 西 野씨를 소개했다.

西野씨는 2015년은 역사문제 생활문제가 동아시아를 지배했다.

역사문제는 전후 50주년 조선반도 지배로부터 해방 70주년 日韓관계 국교정상화 50주년, 지역 중국과 북조선이 70주년의 해다.

조선 노동당 70주년이며 중국도 70주년 기념일로 韓日, 朝日관계는 동북아시아에 영향을 줬고 앞으로도 주게 될 것이다.

한일 정상화 50주년으로 6월 22일 이 조약일로 기대했으나 韓日간 수뇌회담은 게속 어려운 상황이다.

전망은 8.15전후 해방 70주년 종전 70주년에 일본정부는 아베 담화를 준비하고 있고 아베담화 내용에 따라 韓日, 中日간에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9월 3일 항일전쟁 북경 이벤트가 있고 아직 어느 국가에서 누가 참가할까? 잘 모르지만 수뇌 참석 가능성이 주목된다.

조선은 10월 10일 조선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로 경제 발전성과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역사와 지정학이 지배하는 2015년으로 표현하고 전후 70년, 해방 70년, 일한국교 50년, 항일 전쟁승리 70년, 노동당창건 70년 등의 행사들이 있고 중국의 대두, 미국의 리바란스(일미 가이드라인, 안보법제, 해양 안전보장 등)은 내셔날리즘과 파워 폴리틱스 속에서의 신중한 정치, 외교 운영의 필요성이 있다.

韓日관계로는 국교 50주년에 1965년 체제가 문제 제기될 것이다.

“위안부 문제”(2011년 8월 헌법재판소 결정)/징용노동공 문제(2012년 5월 대법원 판결)들이 다시 문제 제기 될 것이다.

한일 기본조약 제2조에서는 “더 이상은 무효”이고청구권 경제 협력 협정 제2조에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 된 것으로 된다는 것을 확인”으로 되어 있는 문제가 다시 제기 될 것이고 영유권문제는 분쟁의 해결에 관한 교환 공문은 “일본측은 국제 사법재판소에의 해결을 선호” 하지만 한국은 영토문제는 없으며, 독도는 역사 지리적, 국제적으로 현실로도 우리의(한국) 고유 영토임을 확인하고 이점에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는 일본을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생각 할 정도이고 재 침략의 구실로 생각한다는 것이다.(본 특파원)

“내정문제화”의 추가적 진행에 대해 朝日新聞 AJW(아사히 종합영어뉴스)의 기고를 참조해 달라. 양국 책임자들 언동에의 부정적 인식이 있고 보다 심각한 것은 일본 여론이다(내각부 조사등)

한국에 대한 피로감 “골포스트를 움직이는 한국”이란 인식이 있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세계 유산 등록문제(日韓관계의 현상이 밖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

또 괴리 되고 있는 외교 안보전략(AJISS 코멘터리 참조)으로 서로 다른 對中인식과 정책의 다름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중국에 대해 일본은 군사적 위협으로 적대적이지만 한국은 적대적으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친밀감을 갖고 있다는 것?)

미국의 걱정은 외교 안보면에서 제휴 제의를 하여 2014년 후반이후 韓中관계는 강화 됐다는 점이다.

日韓 외교 안보 찬넬의 복원 TWO TRUCK의 명인들이다.

朝日관계에서는 기대에서 실망으로 가고 있다. 김은경 模田 부부면회(2014년 3월 울란바토르에서)

스톡홀름 합의(2014년 5월) 포괄적이고 전면적 조사를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특별조사위 설치와 제재일부 해제(2014년 7월) → 4차 분과위(“납치 피해자”, 행방불명자, 일본인 유골문제, 잔류일본인, 배우자) 설치 의도, 伊原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 방조(訪朝)(2014년 10월)→교착상태이고 자민당 대북조선조치 시물레이션팀 설립 2015년 5월)했다.

▲ 좁은 외교 공간

북조선 인권에 관한 국련조사위원회(COI)보고서(2014년 3월), 남북대화 정체(2014년 10월 아시아대회 개막식 불발), 조미관계 긴장(2014년 말 사이버 공격? 등) 김정은 방러 없고 조중정치 관계 정체가 지속되고 있다.

내정문제의 산적으로 안보법제 논의, 전후 70년 담화(2015년 8월), 김정은 체제 안정, 경제성과 → 당창건 70년 축하(2015년 10월 10일)들의 조일간 각각 내정문제가 산적해 있다.

▲ 앞으로의 전망

일한관계는 미한 수뇌회담(2015년 6월)의 결과가 주목되고 “투 트럭”의 유지, 위안부문제의 곤란 유지되고 전후 70년 담화 후의 동향과 일중 관계 진척 정도, 일중한 수뇌회담시의 일한 수뇌회담, 2016년 이후는 선거의 계절로 들어선다.(2016년 4월 한국 총선거, 7월 일본 참의원 선거, 11월 미대통령 선거, 2017년 12월 한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 朝日관계에서는

“1년을 목표”로 해서 조사서 알리는 기일의 연기와 수면하 협의의 지속이 필요하고 남북관계, 조미관계, 조중관계의 동향에 주시하며 日美韓 연계의 복원이 요구된다.

조선노동당 70년에 평화 공세일까? 군사력 과시일까? 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북조선은 노동당 창건일까지 성과가 높아 질 것이고 외교적 노력의 성과가 있을까가 중요 포인트이다.

2015년 여러 기념일은 동아시아 주변에 영향을 줄 것 이고 중국의 태도는 미국의 리바란스가 일중일조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일한관계의 1965년 체제가 위기에 직면했다.

원인은 종군 위안부문제와 징용 노동자 문제이고 영유권문제이다.

이는 1965년 협정의 해석의 각각 다름에 있다.

1965 日韓기본조약 제2조 그 시점에서 식민지 지배가 무효화됐다고 보는 반면 한국은 한일 평화조약은 불평등조약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 그 자체가 무효다.

한일관계의 어려운 문제이며 현안문제이다.

36년간 식민지 통치 사실과 전 후 새 관계를 열자

일종의 “픽션”으로 불법적 통치는 무효다,로부터 시작한 점에서 다르다.

인식의 다름이 역사 문제의 근원이고 이는 50년간 계속해 왔다.

50년간 동안에 냉전기에는 표면화 되지 않았다.

조약해석은 자기식으로 해서 공산주의와 대항키 위해 서로 “이해해”(덮어 두고)왔다.

냉전이 끝나고 직면한 동 아시아 국제정세 파워 바란스 변화와 인식의 다름이 표면화되어 나왔다.

내정문제에 밀접히 연계되고 있다. 즉 한국은 냉전기엔 자기 주장 할 수 없었지만 국제적 지위가 높아져 프라이드로 대등한 것으로 해야 한국 국민 인식문제여서 위안부, 징용문제 나타난 것이다.

일본은 제2차 아베 내각까지 매년 수상이 바뀌고(小泉를 빼면) 경제문제에도 자신을 잃은 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의 문제가 제기되고 일본은 화 내는 것이 3-4년 사이 일어 난 것, 내정문제 간섭하는가 진행형으로 한국은 자심감이 생기고 일본 국내 반발과 리더쉽 레벨에도 심각하다.

현재 한국 국민은 아베를 부정적으로 본다.

일본국민은 박근혜를 부정적으로 본다.

박근혜가 외국 여행에서 일본 수상을 비난하고 부정적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일한 양국민이 부정적으로 보는 내용은 아사히 신문 양국민 리더 국민감정 개인 분석으로도 일본에 대한 감정 악화가 심각하다.

한국 사람들은 불행한 과거가 더 있어서 특별히 부정적 감정이 계속해 왔다.

일본인은 한국에 그리 부정적인 감정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내각부 여론 조사에 나타난 것은 1999년 이후 계속 친밑감이 컸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일본 국민 66%가 친밀감 느끼지 않는다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국민감정 배경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혐한” 것이 되고 있다.

1-2년 사이에 한국에 대한 피로감, 골포스트를 움직인다는 등 정책 커뮤니티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몇 번이고 사죄했다. 한국은 사죄하지 읺는다. 1998년 日韓공동선언, 역사문제는 이것으로 끝났다. 불신감, 무라야마, 고노담화 등 계속 거론되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유감이지만 양국 톱 하이레벨사이 잃어버린 신뢰가 구축되지 않으면 불신감 계속 할 수 밖에 없고 신뢰관계 구축은 용의치 않다.

日韓관계 상황은 최근 세계문화유산 등록 문제에도 나타난다.

10년전이라면 수면하에서 조절되어버렸을 것이기에 표면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문제가 안 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산업혁명유산”등록 신청을 앞두고 한국에서 일본이 신청하겠다는 23시설 중 端 島탄광(군함도)등 7시설에서는 식민지시대 말기에 약 5만7천9백인의 조선인이 강제 노동을 당했고 그중에서 94명이 죽었다는 사실로 한국이 등록을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설명으로서 10년전이라면 수면하에서 해결됐을 것이란 뜻이다.(본 특파원)

외교안보전략에서 일본은 대중국관계전략에서 위협으로 보고 있으나 한국은 위협으로 보지 않은 구조적 문제가 차이가 있다.

朝日신문(2014)여론 조사에서 일중한 북조선의 위협에 대해서 일본은 1위 중국으로 55%, 북조선 29%로 나타났고, 한국은 1위 북조선 65%, 2위 일본 20%, 3위 중국 10%등으로 서로 다르고 日韓양국이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 (2015 조사)를 숫자로 표시하면 일본은 미국 74%, 중국 14%, 한국은 미국 47%, 중국 46%로 나왔고, 현재 장래 중국지역 조사에서 서로 다르면, 정책이 다르고, 불신감이 나올 것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 한국의 일본 정책, 상황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보다 심각한 상황 인식이 미국이다.

개인적으로 작년 여름 이후 미국은 韓日간 협력하도록 노력해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한일관계복원, 역사문제의 다른 영역으로 점근, 일미 일한 접근도 다른 느낌을 감지, 한국에서 명확히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은 역사문제와 안전보장 외교 보위 관계개선에서 투 트럭 접근이 계속될 것이다.

일조관계는 한마디로 다음달이 특별위 설립 1년 사이 일본은 국내의 기대는 높았으나 실망이고 불만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를 포함(브리핑자) 조선문제 전문가들은 예상한 결과이다.

처음 기대가 너무 컸다.

작년 4월 4분과위 설립 “유골, 행방불명자, ‘납치’, 일본인 처 잔류 일본인”등으로 조선은 “납치문제”는 1/4로 진행하려 한 것이고 일본은 소위 “납치문제”를 최우선 해결을 희망하지만 북조선은 “유골 반환”등과 함께 1/4로 취급해 1년 계속되어 왔다.

일본측은 공식적 인정, ‘요꼬다메구미’ 보강하기 요구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으면 북조선 요구 사정을 받기 어렵다.

朝日협의 보도 수면화 계속되나 인식차이 계속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측 관점은 기대가 너무 컸고, 정보 나오지 않으면 조선 요구 받기 어렵고 아베는 국내 정치정세와 국내 문제의 과제가 너무 많아 진전이 어렵다.

아베 국내문제로 국가 안전보장이론, 외교적으로 70년 담화, 9월 자민당 총 재선거가 중요하며, 경제적 상황, 경제 활성화시키는 일이며, 아베는 국민 앞에 납치문제는 해결 안된다고 말 할 수 없고 정보가 없어서 수면하에서 가을까지 계속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측은 중요한 것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성공을 위한 노력으로 가득차 있다.

1년간 서로 간 기대한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 감촉하지 못하고 경제성과 없어서 우선주의가 높지 않고 완전 폐기는 어렵고 잠시 동안 수면하에서 참자는 식이다.

최후로 전망은 중요한 것은 韓日 朝日관계는 앞으로 국내의 내정문제로 될 것.

금년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내년 4월 한국 총선거, 2017년 한국 대통령 선거, 내년(2016)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로 금년 가을부터 선거 계절로 들어간다.

일본 내년 이후는 외교, 朝日관계 기본은 2국간 교섭인데 국제관계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조간 관계가 움직이는 때는 국제정세가 크게 움직이는 때다.

예로 2002년 小泉회담은 한국에서 2000년 남북 수뇌회담이 있었다.

조미관계, 중조관계가 어떻게 움직인가에 따라 조일관계 영향 받을 것.

전후 65년간 서로 다름이 현재 문제로 되고 있다.

기본조약 “위안부” 징병공, 기본조약에 부속 조항, 경제협력등과 밀접히 관계하고 있다.

“위안부”문제 카바 못한 것은 틀 외의 문제다.

한일 협정에서 65년 법적으로 해결 끝났다. 인도적 도의적 문제의식 노력, 고노, 무라야마 담화 후 아세아 조성 기금으로 도의적 인도적 입장에서 노력 했으나 국가 책임 인정 요구로 거부하고 있다.

“위안부”문제는 65년 교섭 테이블 위에는 올리지 않았다. 필요한 조치를 요구한다며 일본에 노력을 촉구했다.

군에 강제 동원된 징병공 문제는 일본과 한국 정부도 같은 입장이다.

65년에 해결했다고 생각되고 재판소도 원고 폐소 판결, 일본 기업과 일본정부에 직접 교섭 노력해야한다.고 했다.

영유권 문제는 단기적 해결이 어렵다.

한일 관계에 다른 영향이 없도록 신중히 관리 할 문제라고 전하고 있다.

본 특파원은 두가지 질문을 했다.

일본은 사죄문제에 대해 사죄해도 한국은 계속 사죄를 요구한다며 언제까지 사죄해야 하는가?라고 말하지만 진심을 담아 성실하고 공식적인 정부의 사죄표시라면 한번으로 끝나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은 사죄를 하고도 한쪽에서는 보수적 현직 정치인들 가운데는 망언을 일삼아 공식적 사죄의 진의를 의심케 한다.

이것이 일본의 현실인데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려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납치문제에 대해서인데 일본 정치권에서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매스컴까지 동원하여 교섭이 시작되는 상황에서부터 불신으로 가득하고 거론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망라해서 수백명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일본 국민은 그것을 믿고 있으나 이 회견장에서 발표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이번 조사에서 생존자가 한사람이라도 나오면 큰 성과라고 말하고 있다.

조일 교섭이 시작되기 전에 불신감을 가졌다 해도 일단 교섭이 시작되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교가 되어야 할 것이고 비난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중상 모략적인 비난과 불신조장과 학교와 간부들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교섭의 성과를 바랄 수 있겠는가?

결과가 나와 발표했다 해도 이런 불신 속에서 그 성과를 믿을 수 있겠는가?

교섭중에도 이런 불신 상황 속에서 결과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조일 관계 교섭이 진행되면서 헤이트 스피치와 차별적 발언은 더욱 거세지고 불신이 가득함을 보면서 정말로 놀랐다.

이는 기대감에서가 아니라 교섭에서 성과보다 정치에 악용하려는 술수를 보게 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진실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 결과를 내 놓을 수 있겠는가?

가족들 가운데도 압력과 교섭을 원한다. 압력을 넣으면 순순히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140여개국 과의 국가 관계를 맺고 있는 자존심 강한 나라임을 잊어서는 교섭의 성과를 얻기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본에 대한 조선측에서도 일본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섭은 성실하고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고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1년간 조사 결과를 바라기 전에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과 매스컴, 일본국민들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를 믿을 수 있도록 다시 냉정하게 차분한 마음이 되도록 정부의 홍보가 앞서야 할 것이다.

역대정권이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일본 현 정부가 아니 내가(아베) 소위 “납치문제”를 해결했다는 국내외용 정치적 악용을 위한 정치 홍보용이나 개인 능력 과시용이 아니라 진실로 가족들과 당사자들 입장에서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낮은 자세로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 속에 성실한 답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가?

답변으로 중요한 지적을 해줬다. 한국의 국민감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잘 나타내고 있다.

나도(설명자) 한국에서 공부를 해서 잘 안다.

개인생각으로는 가해자로서 일본 측은 침략, 반성 사죄에 대해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의 사죄에 이어 망언이 나와 불신으로 이어지고 역사인식문제도 아베 총리의 개인 감정이 담겨 있으나 최소한의 담보인 “고노, 무라야마 원 총리 담화를 계승한다.”는 발언도 담겨 있으니 한국 국민들이 이점 “고노, 무라야마 담화 계승”한다는 담보에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는 답변이고 이어서

일조관계에 대한 질문의 의견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일본 정부와 정치가들은 국민들에게 설명을 해서 일본의 요구와 일본이 요구하는 것을 이해시키고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고 매스컴도 한 곳에 포커스를 맞춰 집중치 않고 다양한 상황을 알려야 한다.

小泉전총리는 중요한 문제에 국민적 이해 노력으로 국민과 정치가 하나로 이어지듯 이의 노력의 필요성이 있다.

일본 정치가들이 일조관계에 “납치문제”를 크게 부각시켜 이점만 부각시켜 토털접근이 되어 있지 않다.

물론 “납치문제”가 중요하고 개인적으로도 어쩔 수 없다고 보며 국민들도 그 점에 집중해서 요구하게 됐다. 그러나 2002년 小泉원총리 이후 일본이 북조선에 불신감과 관계 인맥이 없어 토털 북조선 관계가 필요하지만 우선적인 일에 집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9.17 평양선언 현재도 실현 안 되고 있고 불신감이 가중되었고 미국 국제사회도 2002년 2006년 9.13 핵실험으로 국제사회 용인이 어렵고 신뢰가 어렵게 됐다.

어느 정권도 곤란했다고 본다.는 답변이다.

개발과 실험이 빈번함은 미국과 국제적 탄압이 심할 때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고 개발과 실험전에 신뢰구축을 위한 일본과 미국의 조선 국교 정상화를 위한 4대국 교차승인으로 신뢰가 쌓였다면 핵개발 실험은 없었으리라 볼 때 약속대로 러시아 중국은 한국을 승인했지만 일본과 미국은 조선과 교류를 않고 있는 약속 불이행에 주목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어서 지적했다.

 

2015년 6월 9일

本社 顧問 兼 特派員 趙相祿 sangrokjui@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