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에서 戰後70年 – 安全保障의 視點에서 –

전후70년 안보 

 

2015년 7월 22일 오후 2:00-3:30분까지 FPCJ 회견실에서 辻씨의 통역으로 岡本아소시에이츠 대표 취체역이며 MIT시니어 펠로인 岡本行夫씨의 일본의 안전보장의 시점에서 본 전후 70년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사회는 2015년 7월 16일 오후 안전보장 관련 법안이 衆議院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전후 70년이라는 역사적 고비인 금년 일본의 안전보장정책은 역사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전후 70년의 일본의 행보를 감안하여 일본의 안보정책의 현상과 전망에 대해 듣기로 하자며 岡本씨를 소개했고 岡本씨는 전후 70년 군사적으로 세계 톱 5개국 중 3개국 중국, 러시아, 북조선, 한국 등 4개국이 밀집된 군사집중 지역이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는 군대 병사수가 많은 곳 일본은 타이완까지 합쳐서 각국과 전부 분쟁이 있다.

모든 인접국가와 지역분쟁이 전부 있는 곳은 세계에서 일본뿐이다.

이렇게 긴장된 곳이지만 위협 없이 지내왔다.

“이는 헌법9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일미 안보조약”이 있어서라고 견해를 岡本씨는 피력했다.

일본은 전수 방위 방패 역활을 했고 미국은 공격으로 창 역할을 해서 일본은 안전했다.

GDP상위국이지만 세계무역에서는 102번. 103번째로 소액이다.

이런 속에서 안전이 유지된 것은 기적적이다.

일미안보조약에 의해 일본의 공격은 미국의 공격이다는 표명이 있어서이다.

일미 안전 보장체제는 주변지역문제가 높아지면 안보법제의 바램이 여기에 하나있다.

이번 안보법제로 집단적 자위권 타결은 일본이 보통국가로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위대는 정부견해로 무기를 갖지 못한 군대였고, 그동안은 위기 최전선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자위대 선박, 항공기 등의 자위대가 해야 할 일을 민간 공무원이 하는 그런 체제였다.

그러한 정부 견해는 틀린 것이다. 일본은 개별적 자위권으로 당연히 일본 국토공격에 배격할 권리에 너무 집착해 있었다.

해외의 일본인의 재산, 선박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 못했다.

좁게 생각하는 개별적 자위권 그 외 모두는 집단적 자위권으로 정리 되었다.

내각법제국까지도 집단적 자위권은 타국을 지키는 권리로 잘못 해석했다.

일본의 국토가 공격받은 외에는 위험하지 않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43년동안 잘못 해석해 온 것은 아베수상은 처음으로 용기 있는 결단을 했다” 집단적 자위권 무력 공격받을 때 일본을 방위하는 것에 착목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가능한가?

2001년 9.11 테러 등 세계중의 테러리스트들은 외국 미국을 공격한다.

중요한때 대기해야 했고 동경만은 해상자위대가 방위해 달라 요청받았을 때 자위대는 법적 권한이 없었다.

자위대 방위과장이 아이디어를 내서 자위대법 85조 조사연구 할 수 있는 조항활용 함대의 활동이 어떤가에 대한 연구 조사 명목으로 미함대와 公海상에서 미함대와 함께 일본 해상자위대가 방위 할 수 있었다고 예를 들었다.

이 내용이 미국에서 계속적으로 방영되어 큰 감동을 줬다고 말했다.

법률개정으로 함께하고 해외에도 함께 가도록 보통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그 후 이 자위대 소위 지혜를 낸 과장은 자위대 톱이 됐다고 예를 들었다.

또 아라비아 해역에서 각국 파견대를 방위하는 예로 금년 5월 일본의 660척과 외국선 2890척을 방위했다고 했다.

외국선박과 일본선박이 함께 해적활동을 저지했다. 그러나 해적이 아니라 국가의 경우라면 군사영역이어서 지금까지 법률하에선 방위하지 못한다.

2주전 전선에서 40Km떨어진 이라크에 있었다.

이슬람국(IS)은 세력이 강하고 확대되어 아라비아해를 포함 아라비아 전 지역으로 세력이 미친다.

해적의 경우 일본 해상자위대가 공격하나 이슬람국 공격해야 할 때는 어떤가? 이와 같이 이상한 국가가 되었다. 전주 국회에서 증언했다.

국민의 6할이 안보법제에 반대하고 민주당은 일본이 외국 국가전쟁을 맡는다고 반대하고 참의원 타결을 남기고 있다.

나는(岡本) 의논을 깊이하는 관념론자가 아니다. 일본의 상황을 어떻게 하면 제일 좋은가 의논되기 바란다.

“아베”와 얘기할 때 사명감이 넘쳐 있었다. 지지율보다 국가 존재에 대한 신념으로 꽉 차 있고 전후 뛰어난 주도권을 발휘한 총리라고 생각한다며 아베 총리를 극찬했다.

전후 70년 일본이 보다 중요한 과제는 각국과 화해이다.

3일전 로스엔젤레스에서 제2차대전 전쟁중 사망자 가족과 포로로 강제 노동을 강요받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화해를 바라고 있다.

사죄는 사죄를 하는 쪽도 중요하만 관대히 받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런 면에서 사죄를 받아들이는 관대함이 있다.

국가는 유럽제국과 화해했으나 일본 노력은 전쟁중과 다른 국가가 되었다.

사죄를 유럽 국가들이 받아준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 한국은 사죄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요한 국가들과 화해가 될까?

어려운 과정으로 해내야 할 것이다. 매우 중요한 국가들인 중국과 한국과의 화해가 과제다

중국과는 조금씩 개선되고 아베총리 중국방문 조정 노력을 하고 있다.

9월 3일 중국전승70주년 이후가 되면 조금씩 개선될 것이다.

본래는 한국과 화해가 가능할 것으로 봤으나 일한관계에서 한국과 개선이 어렵다고 본다.

나의(岡本) 友人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최근 혼란을 빚고 있는 안건으로 집단적 자위권이 헌법위반인가?

1972년 현재까지는 위헌이었다.

지금 국제 정세는 일국만으로 방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가 일본을 지킬 것인가? 라며 국제정세 변화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로 환경법에서도 제정이 필요하고 헌법을 바꿔야 한다며 현 일본 정권과 똑 같은 설명으로 결론을 냈다.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니 해석을 바꾸는 것이다.

헌법의 합리적 범위내에서 그간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답했다.

헌법 9조도 일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일본을 방위 해외 일본인명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헌법학자들은 좁은 해석 한다며 수많은 헌법학자들 견해도 부정했다.

일본 자위대는 23만명으로 미얀마군대보다 적다.

징병제는 없다고 해도 야당에서는 추궁하고 있다.

지금부터 자위대가 현실적으로 군대로서 유연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평화 구축에 역할 할 것이다.

오늘 브리핑은 민감한 사항이었지만 보수적 평론가의 궤변에 가까운 견해를 들으면서 특히 민족적 문제에 직면에서는 일본 보수세력들의 아전인수적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우울해졌다.

전문가라는 미명하에 보수적 견해가 통용되고 있고, 외국기자들 앞에서까지 자랑하듯 설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생각케 했다.

몇 가지 질문을 할 예정으로 손을 들었으나 사회도 달갑지 않았던지 마감했다.

평소라면 끝나고 나서라도 질문을 했겠지만 이런 사람에게 질문을 하여 어떤 답변을 듣겠는가 생각되어 생략했다.

이날 브리핑을 다시 간추리면 전후 70년이라는 제목 속에서도 역사적 진실과 객관성을 벗어난 일본 보수적 정치가들에서 보는 보수외교평론가의 개인견해에 불과해서 양심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거부감, 불쾌감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의 보수적 일부정치가나 어용 지식인들의 일단을 잘 들어내고 있는 발표였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날 브리핑의 중점은 일본 시민들 60%이상이 전쟁법안이라고 폐기를 요구하는 “안보법제”는 필요한 것이며 역대 수상들이 건들지 못했던 것을 아베총리가 누구도 하지 못한 것을 용기 있게 바로 잡았다는 극찬이다.

집단적 자위권의 필요성과 소위 “안보법제”는 일미 안보에 중요함을 강조했다. 전후 70년만 일본이 평화의 길을 걸어온 것이 헌법 9조 평화헌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미동맹강화에 있다는 설정부터가 잘못됐다고 본다.

또 세계제2차대전시 미군전쟁포로에 대해 강제노동을 강제한 것에 대해 전쟁희생자들과 피해자들에게 미쓰비시 머티리얼 회사가 사죄했다.

“岡本行夫씨도 보도 멤버로 참가했다면서 네덜란드, 영국, 호주, 스웨덴등의 전쟁포로 피해자들에게도 사죄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중국과 한국의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인식의 궤변이다.

미쓰비시 머티리얼 회사는 강제노동을 한 중국인 피해자들에게도 사죄 배상을 합의 했으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조선에 대한 일제 36년간 식민지 통치로 말과 글을 빼앗아 말로 표현키 어려운 고통을 줬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는 하면서도 “한국인은 강제노동이 아니라 강제 점령(소위합병)에 대한 일본의 강제 징집인 국민총동원령의 법률에 의한 것이라”는 불쾌한 궤변을 내놓고 또 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는 민감한 상황임이라는 점의 이유도 함께 덧붙였다.

岡本씨는 보도 멤버로 참가했다지만 미쓰비시 회사의 사외이사이며 전후 70년 談話懇멤버로서 이들 회사와 단체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가관의 극치는 사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사죄 받아들이는 관대함도 중요하다며 유럽과 미국은 관대히 받아들임이 있지만 중국과 한국은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견해가 일본에 자리하고 있음에 분노하게 한다.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저한 과거청산을 하고 있고 침략국으로서 오명을 벗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이웃나라들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국민들의 일면이라도 배워 교훈으로 삼는다면 이런 몰상식한 견해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런식이라면 어쩌면 영원히 한국과는 진정한 화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제 군국주의를 추종하는 극일부의 정치인들과 어용학자들 추종세력들을 제외하고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 지식인들 일본의 자연과 문화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일본의 보통사람들에게서는 “상식이 통해서”좋다고 생각하고 엄하다는 일본 입관도 엄중한 곳 이지만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고” 나는 일본 출입국 관리국에 대한 기사에서 언급한 일이 있다.

일본의 자랑은 헌법9조 평화헌법하에 정치사상 종교이념을 넘어서 세계 어느 나라와도 자유로운 교류와 경제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자유”를 조금이라도 억압당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전쟁을 허용하는 나라로 변모하려고 깊숙이 들어 왔고 자유에 대한 억압이 조금씩이지만 침식당하고 있음을 도처에서 확인하게 된다.

애정을 갖게 한 일본의 자유가 침식당하려고 한다. 전쟁법안으로 미국이 가는 곳은 어느 곳이라도 가게 될 것이고 국내에서는 내년부터 실시되는 마이넘버가 정권의 손에 빅데이터에 의해 악용되면 그나마 누려오던 사생활마저 통제 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징병제는 없다고 하지만 해외파병이 늘고 세계를 무력으로 관여하고 싶은 보수정치인들이라면 지금은 남아돈다지만 부족한 병력은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악법의 경우도 처음은 내용이 아무것도 없이 형식만으로 형태를 만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야금야금 빈그릇(형태)에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는 식이 현 정권이 행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무력으로 세계에 관여하기위해서는 머지않은 장래는 핵무기가 요구될 것이고 미국의 허용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모든 준비는 끝난 상황이다. 다량의 플로토늄 원료도 있고 민간에서도 위성을 쏘아 올리는 기술을 갖고 있으며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선에 일본의 기술과 우주과학자들이 계속하여 경험을 쌓아가고 있고 경제력도 있다.

문제는 미국의 허용인데 미국도 점점 힘이 약해져서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 기회가 올 것이고 일미동맹 강화는 이 기회를 훨씬 앞 당길 수도 있을지 모른다.

거기에 JAXA에서 개발한 입실론 기술이라든가 선단과학과 결합하면 무서운 무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리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도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는 것은 전력사정보다 이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기우이길 바랄뿐이다.

헌법은 집권자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헌법은 국민이 지향하는 이상 국민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라고 생각한다.

일미 동맹은 선악과 일본의 이익과 불이익을 떠나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수단중에 일부일 뿐이다.

岡本씨가 말하는 “일본을 지켜온 것은 평화헌법 9조가 아니라 일미동맹이다”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일본 보수정치인들이 말하듯 백보를 양보해서 일미동맹이라면 만일 일미 동맹이 없었다면 지금 일본은 소멸되었을까?

지금 일미가 주적으로 삼고 있는 중국, 조선, 러시아가 일본을 점령하여 식민지나 혹은 멸망시켰다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교역과 교류를 할 수 있고 경제력을 갖춘 일본을 외국이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겠는가?

냉전의 시대에도 그리는 못했을 것이고 더욱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시대에 침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는 세계의 양심들이 용납시키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화해가 어렵다는 이유는?

보수적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일본의 양심들처럼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독일처럼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잘못된 과거 역사를 진심으로 사죄 반성하고 끊임없는 성실성으로 화해와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면 주변국들과 그동안 피해를 준 모든 나라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시 3천만 민족 동포전체가 일제 식민지 속에서 강제노동과 착취를 당해 왔다고 본다. 나라를 강탈하고 민족의 말과 글 이름까지도 문화예술을 파괴하고 과학과 민족혼마저 말살시켰으며 문화재와 생활도구들까지도 공출해갔던 일제 군국주의에 대해 지금도 합리화하고 조금도 반성치 않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 민족을 통치 한 것을 마음속으로는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몇 번이고 사죄했는데 언제까지 사죄해야 하느냐고 한다. 당한 피해자들이 이해가 될 때까지 사죄하고 반성하고 배상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 배상이라면 한번으로 끝내고 싶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조선 민족은 같은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 사죄하고도 곧이어 현직 정치인들 가운데 사죄를 번복하는 망언이 나오고 이어질 때 어찌 진정으로 사죄했다고 보겠는가?

입장이 바뀌어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당해서 같은 망언을 들었다면 지금의 한국에서 항의 보다 더 험한 상황이 벌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지 않으면 두고두고 세계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노동 사죄배상 문제, 과거 역사 청산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때마다 일본은 이들 문제로 인한 손실과 수치가 될 것이다.

나라를 강탈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고도 강제노동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는 강제동원령 운운은 참으로 한심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의 관대함을 말하지만 유럽과 미국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도 아니고 그 피해의 정도도 중국인과 조선인(한국)인의 피해에 비한다면 비교되지 않으며 조선(한국)은 36년간의 기나긴 세월 억압 속에 살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또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관대함에 대한 말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일본인들의 보통 상식을 벗어 난 말이라 생각한다.

나는 일본이 주변국가로부터 사랑받는 나라의 길을 걷길 바란다. 나는 일본이 비동맹 중립국으로 중립지재를 설치하고 자유 민주 평등 평화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한나라인 미국과 강한 동맹을 맺었다고 하지만 사실상 미국의 용병국(앞잡이)같은 느낌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 브럭과 브럭간에 중간에 서서 대등하게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지위적으로도 동등하게 될 것이고 훨씬 주권국가로 떳떳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평화헌법상에서 유엔의 평화적 지원 분쟁 해소지원, 해내외 자연피해 지원등에 활동하는 것이 훨씬 떳떳한 일이다.

만일 미국이 가는 곳 어디도 가게되면 취사 선택하여 간다 해도 언젠가는 전쟁에 휘말릴 것이고 상대에 타격만큼 피해 또한 클 것이다. 그리될 때 피해 당사자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계 어느나라도 같지만 일본도 “평화”만이 살길이다.

일본은 이번 안보법제 강제 타결로 의회에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타결을 했다.

일본 국민의 60%이상이 위헌이라고 하고 이번 국회에서 강제적 타결은 잘못이라고 80%이상의 국민들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렇게 강행을 원한다면 헌법 개헌 선거를 통해 실추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할 것이라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만일 집단적 자위권 결정이 없었던 시기여서 이슬람국에 처형된 두 사람의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생각 할 수 있겠는데 “안보법제” 타결 후에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구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안보법이 없었던 옛날이라면 일본인의 인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외국 지원보다 외국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라도 먼저 인명 구출에 중점을 두고 구출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 것은 과거의 유사 상태에서 일본이 취했던 교섭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안보법제”가 타결되었으니 같은 상황일 때 무력에 의해 일본인들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논리가 되는데 과연 생각대로 될까?

당시 이슬람국의 메시지는 왜 멀리 떨어진 상관도 없는데 끼어드느냐는 내용의 메시지가 있었다.

무력으로 해결하려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납치 상황을 알고도 중동에 가서 지원 약속을 하면 상대가 힘에 눌려 그만 둘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옛말에도 정치가의 말은 천금에 해당할 정도로 무겁고 귀중한 것이라 했다.

말의 실수는 귀중한 목숨을 잃게 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애국심이란 미명하에 독단적 자의적 해석을 말고 전문적인 헌법학자들과 지식인, 학생들 양심세력들 반대에 귀 기울려 국민적 총의가 모아질 때 까지 만이라도 폐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7월 31일에는 100여명의 학자들의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집회와 데모를 예정하고 있다.

안보법제를 반대하는 수많은 민중은 국가를 사랑치 않고 소수의 찬성하는 사람만이 애국심이 있는 것 같은 아전인수식 해석도 민주주의를 멍들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의 당숙도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말레이시아 남방 전투에서 지옥을 겪으셨다.

오늘 브리핑을 들으면서 분노가 일었다.

岡本씨 개인적으로는 일제 36년 식민지화로 국가와 말까지 빼앗은 것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미쓰비시 그룹의 사외이사면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강제로 일본인으로 만들어 “국민동원령”운운 하거나 국가 책임이 끝났다. 시효가 끝났다 등 이유로 제외하는데 동의하고 있다.

일본국은 필요시에만 강제로 일본인으로 만들고 불필요하면 외국인 취급을 한 점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진심으로 사죄 반성 배상하고 피해 당사국들의 입장에서 독일처럼 화해를 위한 꾸준한 노력만이 활발한 교류 평화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인들 속에는 참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양심적이고 민주적인 인사들이 많은데 극 일부의 보수적 어용학자들은 망언을 계속하는 현실은 평화적 교류에 영원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2015년 7월 22일

本社 顧問 兼 特派員 趙相祿 sangrokjui@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