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수 있을까…주름진 세월에 모두 울었다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눈물과 감격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넓은지 알아요?” (아내 이순규 씨)
“알아. 처녀 총각이 만나서 죽으나 사나 같이 있는 거야.”(남편 오인세 씨)

억겁 같은 세월의 기다림. 결혼 반년 만에 헤어졌던 부부는 65년 만에 금강산에서 재회했다. 헤어질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 이순규(85) 씨와 남편 오인세(83) 씨는 그들을 갈라놓은 분단의 아픔 속에서 길고 긴 각자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새색시는 백발의 할머니로 변했지만 수줍은 미소는 그대로였다. 1950년 어머니 뱃속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들 장균(65) 씨는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며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남편은 어색하지만 애틋한 눈빛을 담아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상봉 첫 만남에서 세월의 흐름에 목이 메어 말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상봉 3일간 두 사람은 마치 신혼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부부는 아쉬운 작별의 순간에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에게 “지하에서 또 만나…”라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 면회소에는 65년 이산의 세월을 녹이는 애틋한 사연들로 홍수를 이뤘다.

20~26일 1, 2차로 나눠
3일씩 상봉 행사 진행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1차는 20~22일, 2차는 24~26일로 나눠 진행됐다.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 먼저 북측 방문단이 재남 가족을 만났고, 10월 24일부터 26일에는 우리 측 방문단이 재북 가족과 상봉의 순간을 맞았다. 3일간 단체 상봉, 환영 만찬, 개별 상봉, 공동 중식, 실내 단체 상봉, 작별 상봉 등 여섯 차례의 만남으로 진행됐다.

금강산면회소는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난 이산가족들의 감격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 첫날인 20일에는 단체 상봉과 환영 만찬 등 공개 행사가 열려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현장 분위기는 다소 흥분된 상태로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상봉 이틀째엔 양측 가족들이 2시간씩 3차례에 걸쳐 총 6시간 동안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개별 상봉은 북측 가족들이 남측 가족들의 숙소를 방문해 각자 방에서 비공개로 이뤄졌다. 상봉 가족들은 헤어진 세월 동안의 못다 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누고 각자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남측 가족들은 방한복, 내의, 생필품, 의약품 등 물건과 미화 1500달러를 넘지 않는 범위의 현금을 북측 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북측 가족들도 남측 가족에게 전달할 ‘공동 선물’로 평양술, 백두산들쭉술 등을 준비했고 개별 선물을 준비한 가족들도 일부 있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지난 22일 오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 행사를 마친 이산가족들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지난 22일 오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 행사를 마친 이산가족들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제공)

한편 마지막 날에는 2시간 동안 작별 상봉을 한 뒤 12시간의 아쉬운 만남을 마무리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나온 여러 구슬픈 사연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결혼한 뒤 겨우 6개월의 신혼 생활을 하다 헤어져 65년 만에 재회한 노부부의 사연은 주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돌아가신 줄 알고 40년 가까이 제사를 지냈던 아버지를 만난 아들의 이야기도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 밖에도 상봉자들은 각자 애달픈 사연을 안고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이산가족들에게 상봉의 기쁨을 안겨주는 축제의 장이 되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상봉자 평균 연령 80대, 우려의 시각 제기
북한, 과도한 검열로 행사 지연되기도

우선 이산가족 상봉자들의 고령화 문제다. 이번 상봉 행사 참가자 연령은 80~90대가 주를 이뤘다. 우리 측 방문단의 최고령자는 98세, 북측은 88세로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아 상봉장에서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등 진행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이번 상봉에서 북한 측에는 90대 이상은 한 명도 없고, 우리 경우에는 80대 고령자들이 상당히 많다. 현재 남측에 살아 있는 이산가족 중 54%가 80대 이상인 실정이다. 특히 매년 4000여 명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노환 등으로 타계해 머지않아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금강산면회소를 방문한 이산가족들과 취재진의 전자기기를 일일이 검열하는 등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 세관원들은 북한 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한 이산가족 상봉단 상대로 한 시간 넘게 노트북과 태블릿 PC의 내용을 일일이 확인했고, 이 때문에 행사 일정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약사

6·25전쟁에 이은 남북 분단으로 1000만 명 정도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이후 남북 적십자사 간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다.

지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한 이후,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됐다. 그리고 2000년 8월 역사적인 제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성사됐고, 이후 14년간 총 19번의 방문 상봉과 7번의 화상 상봉이 성사됐다. 첫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2000년 8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18번의 상봉이 성사되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2010년 말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이후 2014년 2월, 제19차 이산가족 상봉이 열리면서 3년 4개월 만에 재개됐다.

특히 화상 상봉은 거동이 불편해 직접 상봉 현장에 나올 수 없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 상봉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화상 상봉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총 7차례 진행됐고, 상봉 행사를 통해 총 557가족, 3748명의 이산가족이 만남을 가졌다.

지금까지 진행된 19차례의 대면 상봉과 7차례 화상 상봉을 통해 남북 총 4491가족, 2만2547명이 그리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년 8개월 만에 이뤄진 것으로 1, 2차로 나눠 만남을 진행했다. 1차에는 북측 96가족이 상봉을 신청해 남측 가족 389명과 만났고, 2차에는 남측 90가족(255명)이 상봉을 신청해 북측 가족과 만났다.

2000년 이후 대한적십자사에 13만여 명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희망했으며, 이 중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은 약 6만6000명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