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권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숫자가 존재한다. 예로부터 동양이나 서양에선 1을 근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수로 여겼다. 2는 여러 문화권에서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수로 통했다.
중국에선 두쌍의 부부가 같은 날 결혼하는 것을 금기시했고 유대교 율법은 남자가 두 여자나 두 마리 개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금했다. 숫자 3을 신성시한 수메르인들은 ‘이누’‘엔릴’‘엔키’등 3명의 신이 하늘과 대지, 물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동양에선 4를 죽음과 저주를 의미하는 수로 여기지만 서양에선 “질서와 통합”을 의미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처음 4개의 수인 1,2,3,4를 더하면 완전한 숫자인 10이 되고, 세상이 물ㆍ불ㆍ흙ㆍ공기라는 4원소로 구성된 것만 봐도 4는 조화로운 숫자라고 했다.
5는 인간의 오감과 깊은 연관을 맺은 숫자로 간주 돼 왔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5를 “가장 인간적인 숫자”로 여긴 것이나 신약성서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5명의 여성이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출신 저술가 아네마리 쉼멜은 “수의 개념은 종교와 민간신앙을 자양분으로 신비주의와 마법문화의 삭을 틔웠다”고 했다.
지난 9일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에서도 퇴장 1명,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라는 결과가 나왔다.
퇴장-찬성-반대-무효표 숫자를 차례로 연결하면 “1234567”이 된다.
누리꾼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탄핵인용 박근혜대통령 9(구)속, 0(영)창행을 조합하면 ‘1234567890’이 완성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의 비율도 절묘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5-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탄핵 찬성이 78.2%로 집계됐는데 이 수치를 반내림해 국회의원 총재적수 300명을 곱하면 탄핵찬성 의원수 234명이 나온다.
국회 탄핵안 표결에서 숫자의 마법을 가능케 했던 것은 다름이 아닌 시민들의 집단지성이었다. 탄핵 민심이 국회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민심과 표결 결과가 이렇게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이를 박대통령이 평소에 했던 말에 빗대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숫자의 조합”이라고 했다.
박근혜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열린 10일 촛불 시위는 축제처럼 진행됐다고 한다.
폭죽가지 터졌다. 그러나 지금 나라가 처한 경제ㆍ외교ㆍ안보 상황은 우리 사회가 자축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위기이다.
국제사회는 평화로운 시위의 힘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국 사회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를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반도 밖에서는 사드, 한ㆍ위안부합의,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기존의 정책이 지속 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안 통과 직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우리 측에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주문한 것은 이런 불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 상황이 불투명한데 내년 상반기까지 6개월 이상 정상 외교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도 큰 문제다.
지난 두달여간 박대통령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우리나라 최우선 과제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이제부터는 벼랑 끝의 경제ㆍ외교ㆍ안보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되돌아와야 한다.
하루빨리 나라 전체를 안정시켜야 한다. 하위 10%의 소득이 16%나 격감했다. 무서운 숫자다.
앞으로도 나라가 계속 정치 바람으로 지새우면 이 무서운 숫자들이 불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단 경제의 대외 신인도 추락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야당은 허약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과도하게 압박하고 흔드는 행태를 삼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 정책을 다 뒤집고 싶다면 대선에서 공약으로 국민 뜻을 물어보면 된다.
비상시기에 정부 여야 국민 모두의 자중과 인내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