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개막한 “호치민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에 보낸 영상 축전에서 “안남국(베트남)의 왕자 리롱떵은 고려에 귀화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다”고 했다. 리롱떵은 베트남 종세 리왕조(1009-1225)의 왕자다. 나라가 망하자 가까스로 탈출해 1226년 옛 황해도 웅진군에 상륙했다고 한다. ‘보트피플’로 도착했지만 도적 퇴치 등에 공을 세워 고려 고종이 ‘화산군’으로 봉했다.
1127년 리왕조의 리즈영꼰 왕자가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이주해 정선이씨의 시조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공통점이 적지 않다. 같은 한자 유교 문화권이다. 젓가락도 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침략에 꿋꿋이 맞서 역사와 문화를 보존했다. 중동 사막이건, 시베리아 눈밭이건 가리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민족은 한국과 베트남사람뿐이라는 말도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서 지난해 베트남 신부와 한국 신랑의 결혼이 6054건으로 중국 신부 5838건을 제치고 처음으로 1위가 됐다.
다문화 혼인 건수가 2010년 이후 해마다 감소하는 상황에서 한국, 베트남 결혼은 2014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쯔엉떤상 베트남 주석은 한국ㆍ베트남관계를 ‘사돈의 나라’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초 우리 농촌에선 ‘베트남 신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이 흔히 눈에 띄었다.
한국인 남편의 학대나 시댁과의 갈등 등으로 고통 겪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스토리가 큰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 신생아 100명 중 5명이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첫 통계 집계가 이뤄진 2008년 1만3443명이던 다문화 출생자는 지난해 1만9431명으로 4.5%쯤 늘었다.
각종 차별과 주변의 몰이해 때문에 학업을 중도 이탈하는 다문화 자녀가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2013-2015년 학교를 그만 둔 다문화 자녀 1960명 중 706명이 ‘부적응’을 이유로 꼽았다.
한ㆍ베트남 부부 2세를 포함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우리사회에서 물 위의 기름 같은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 고구려는 선비족과 숙신족을 아우르며 다민족 국가로 성장했다.
고려의 안정과 발전도 이 문화에 대한 개방과 포용에서 비롯됐다. 인구절벽시대 다문화자녀들은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 우리사회 장래는 이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키우느냐에 달렸을 수도 있다.
인종차별은 미국만의 숙제가 아니다. 한국의 다문화 자녀들은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업, 취업, 결혼 같은 삶의 고비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혼혈아들에게는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려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모델 한현민군(16)은 이런 차별을 극복하고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공개한 2017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선정됐다.
한 군은 국내 유일의 흑인 혼혈 모델 서울패션위크에서 20여개 쇼에 서는 등 데뷔 1년 반 만에 톱 모델 급으로 도약했다. 그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유치원 시절 일화를 들려줬다. 다른 엄마들이 그를 가리키며 ‘저 애랑은 놀지 마. 재랑 놀면 너도 까매질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이태원 토박이인 한 군은 기죽지 않았다. ‘너는 특별하다’는 엄마의 격려 덕이었다. 소외와 따돌림에 시달리는 다문화 자녀와 더불어 ‘그림자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다. 그림자 아이는 불법체류 신분인 미등록 외국인의 자녀를 뜻한다. 어른들 잘못 탓에 ‘인권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애꿎은 아이들을 돕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올해는 디문화 가정에서 출생한 자녀가 결혼 이주민의 수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한다.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대한민국, 다문화가족을 따뜻하게 포용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