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독일 슈뢰더 전 총리가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주변국의 화해에 앞장섰던 총리께서 우리가 죽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중 한 명인 하점연 할머니는 15세 때 위안부로 끌려갔고 그때 입은 피해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슈뢰더는 “참혹한 역사에 희생됐다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계신 할머니들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고 싶다”라고 했다.
하지만 하 할머니는 결국 한을 풀지 못하고 97세로 눈을 감았다. 올해 들어 세상을 떠난 6번째 위안부 할머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27명뿐이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40명이었는데 워낙 고령이다 보니 비보가 쉼 없이 날아온다.
평균 91세가 넘는다. 정부는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됐던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이 재단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으로 설립됐다. 할머니 34명과 유족들이 약 44억 원을 받아갔다. 하지만 현 정부는 출범 직후 위안부 합의를 “외교 적폐 1순위”로 낙인찍었다. 그 뒤 재단은 사실상 식물 상태였다가 공식 해산 통보를 받은 것이다.
김대중ㆍ김영삼 정부 때는 일본이 민간 모금으로 조성한 아시아 여성기금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대다수 피해자는 “일본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려 한다”라고 반대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일본 정부의 공식예산에서 위로금이 나와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은 이를 힘껏 거부해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10억 엔을 전액 일본 정부 예산으로 받아내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이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국민 정서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제 관심은 ‘문재인표 위안부 법’이다. 현 여권은 “10억 엔에 할머니들을 팔아넘겼다.” “일본의 더러운 돈을 돌려줘야 한다”라고 전 정부를 비난해왔다. 그러나 자신들은 어떻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법적 책임 인정을 받아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원장과 자문기구 대표 등을 초청한 간담회에서 “앞으로 위원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해 달라”며 “지금까지는 국정과제를 설계했다면 이제는 국정 성과를 정부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구원자가 돼 달라”고 주문했다.
이미 “위원회 공화국”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정부 위원회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위원회에 “더 많은 역할”을 주문하여 정부에 대한 조언과 건의라는 위원회 본연의 기능을 넘어서 정책의 구현 즉 정책집행까지 관여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에 걱정이 앞선다.
현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일자리위 등 15개 위원회를 신설 해 9월 말 기준 자문위원회가 121개나 된다. 자문위가 가장 많았던 노무현 정부 말기의 535개를 곧 넘어설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문제는 숫자보다 하는 일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여간 집중적으로 추진해 온 이른바 적폐청산은 국가정보원의 개혁위나 검찰의 과거사위처럼 법적 위임 없이 설치된 각 부처 위원회가 직접 수사 의뢰를 남발해 편법 탈법 논란을 일으켰다.
위원회에 책임을 떠미는 정부 부처와 성향에 맞는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해 적폐청산을 밀어붙이려는 정권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무엇보다 있으나 마나 한 위원회가 많다. 이제 중구난방에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위원회는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었다. 위원회는 정부의 자문기관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위원회가 정책의 구현자가 돼서는 책임 있는 국정을 펼칠 수 없다.
이미 정권의 짐이 돼버린 위원회를 과감하게 정리해 정책 추진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