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크교도인 첫 국적 인정 – 다문화사회 확대

한국펀자비협회 라흐바인더 싱(Dr. Lakhvinder Singh)회장(왼쪽)이 대한민국 국적을 최초로 얻은 달진더 싱(Mr. Daljinder Singh)에게 ”rob of honor’ ‘을 선물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소위말하는 ‘은둔의 왕국’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한국의 단일민족 사회는 수천 년 동안 그 문화를 온전하게 보존해 왔다. 외국인과 다른 문화권의 영향은 거의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아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현재까지 이미 25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한국에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다문화주의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 중에는 시크교도가 있다. 현재 숫자는 적지만 그들은  이미 서울 변두리에 구르드와라사히브(예배 장소)를 세워놓고 매주 주일에 인류의 안녕을 위해 와헤구루(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다. (ਸਰਬੱਤਦਾਭਲਾ)

시크교 (Sikhism)는 하나의 신 “ik onkar(ik onkar, ੴ, ੴ)”를 믿는 일신교다. 구루 나낙(1469–1539)이 세운 시크교는 인도 아대륙의 펀자브 지역에서부터 오늘날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어린 종교로 알려진 시크교는 21세기 초 현재 약 4천만 명의  신자들이 있는 세계 9위의 종합 종교다.

초대 지도자인 오그라든 구루 나낙 데브 지의 영적 가르침과 그의 뒤를 이은 9명의 시크 구루를 바탕으로 시크교는 보편적인 형제애를 설교하고 모든 인류의 평등을 믿으며 신분, 신조, 성별에 근거한 사람들 사이의 어떠한 차별도 인정하지 않는다. 10번째 구루인 구루 오그라든 구루 고빈드 싱은 인간 구루스의 노선을 종식하고 시크교도들의 마지막이자 영원한 영적 지침으로 거룩한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를 제정했다. 

시크교 가르침의 핵심은 ‘진실성, 충실성, 자기 수양과 순결성’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실천적인 삶은 형이상학적 진리 위에 있으며 완전한 인간은 신과 결합을 맺고 그의 의지를 알고 그 의지 아래 평생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믿고 있다. 또한 시크교도들은 힌두교의 교리와 계급체계를 거부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개혁 사상을 알리기 위해 17세기부터 터번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비록 시크교가 처음 한국에 전파된 때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근까지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시크교도가 한국으로 이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들은 인도와 중동 국가에  섬유 등을 수출하는 무역 및 기업인으로 한국에 왔으나, 당시 한국정부가 실시한 심각한 비자 제한조치로 인하여 결국 다시 인도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업인구가 부족해지기 시작하자 시크교 농부들이 한국 농업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고, 농촌지역에서는 그들이 매우 환영받았다고 한다. 짧은 기간동안에, 펀자비 시크교 농부들은 한국인들이 그들의 종교적 믿음을 매우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해서 그들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기 시작했다. 어떤 시크교도 가족들은 한국에 50년 이상 정착해 있다. 하지만 심각한 문화적 편견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공개적으로 실천할 수 없었고 낮은자세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사회의 긍정적 다문화 정책의 영향으로 한국인 시크교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한국은 문화적 차이와 인종적 다양성의 포용 역량이 용인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실제로 다문화주의 정책의 경직성이 완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소수민족의 문화, 종교, 그리고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시킬 기본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부각되는 가운데 새로운 다문화 한국이 탄생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변화된 정책의 결과로, 시크교 신자인 Mr. Daljnder Singh는 그의 국적을 인도에서 대한민국으로 바꾸었고 그의 터번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조항들을 유지킬 수 있었다.

이전에 시크교도는그들의 터번을 착용하지 못았고 신분증과 여권사진을 찍을때 긴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고 애써온 시크교도들이 노력한 결과로 그는 첫 번째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시크교도 신자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시크교 커뮤니티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대한한국 국적을 최초로 얻은 그의 가족들은 한국의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정책의 표시로서, 다섯 명의 시크교도 신자들이 한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최근 수크지트 싱, 수크미트 카우르, 재프네트 카우르, 아르샷 싱, 구르조트 싱 (Mr. Sukhjeet Singh, Ms. Sukhmeet Kaur, Ms. Japneet Kaur, Arshot Singh and Gurjot Singh)은 그들의 미래를 위해 큰 꿈을 꾸고 개방적인 믿음을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첫 한국 시크교도 아이들이다.  아르쇼트 싱은 특히 몇 년 안에 한국군에 입대하여 한국에서 복무하고  한국군에서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서는 최초의 시크교인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시크 교도는 인도와 한국군에서 민주주의와 우리의 공동생활방식을 수호하면서 한국의 국방과 군사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시크교 군인들은 전 세계에서 남달리 용기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크교도가 한국군에 입대하게 되면 양국간의 보다 가깝고 강력한 파트너십을 위한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크교도들은 열심히 일하는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순전히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새로 이주한 지역에서 큰 존경을 받았다. 특히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는 시크교도들이 이미 정부의 고위 직책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시크교도들은 지금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정당한 지위를 얻기를 희망한다, 

2001년 경기도에 세워진 구르드와라 사이브라고 불리는 시크교도들의 예배 장소는 아직 한국 정부로부터 예배의 장소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정부가 한국의 시크교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그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그들이 필요로하는 도구를 지역사회에 제공해야 할 때가 왔다.

<조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