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폭력 근절 면피성 대책으론 안 된다

이재봉 대기자

학교폭력(학폭) 파문이 커지고 있다. 최근 불거진 흥국생명 이다영·재영 쌍둥이 자매와 남자배구 OK금융그룹 소속 두 명이 저지른 학교 폭력행위가 피해자들의 폭로로 드러났다. 이들 외에 다른 배구선수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폭로도 나오고 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일반인들 사이의 학폭 사례도 올라오고 있어 ‘학폭 미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체육계 폭력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일명 최숙현법)이 시행되고 있다. 폐쇄회로(CC)TV 설치 추진, 인권침해 피해자 보호 강화 등의 내용이다.

학폭 미투 사례가 끊이질 않는 건 학창 시절에 당한 아픔을 안고 힘들게 살아가는 피해자가 많다는 것이다. “때리거나 상처를 준 사람 자신은 기억하지 못해도 피해자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학폭은 사라지지 않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학생선수 인권상황 조사에서 응답자의 14.7%가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중고교 선수 중 79.6%는 아무 대처를 하지 않거나 소심하게 불만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보복 등 사후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실적 지상주의의 엘리트 체육판에서는 더욱이 폭행과 가혹행위가 사라질 여지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면피성 대책으로는 체육계 폭력을 막을 수 없다. 합숙 시스템 등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함께 ‘운동하려면 맞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뿌리 뽑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성적 지상주의나 국위 선양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

정당성과 공정성은 체육계도 예외일 수 없다. 인성은 등한시하고 오직 성적만을 중요시했던 체육계의 성적 만능주의가 더는 용납돼선 안 된다. 체육계 스스로 폭력을 추방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학폭 문제는 스포츠뿐 아니라 학교 안팎에 엄연히 만연한 범죄 행위여서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인식해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때다.

학업과 스포츠에 대한 성적 지상주의 풍토가 학폭 행위를 숨기거나 묵인하면 학폭의 일상화를 부채질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의 또래나 후배 학생 구타 사건은 날로 흉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학폭에는 일벌백계로 대처해 아무리 실력과 재능이 뛰어나도 인성이 바르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예방기구 설치 등 다양한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