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 교수
강남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한국의 복지예산이 이미 1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예산의 4분의 1을 복지관련 정책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말 금융위기를 지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들은, 적어도 형식적 측면에서는, 이미 복지국가의 대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2007년에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는 노후의 삶의 질에 대한 사회의 공동 노력을 제도화하는 동시에, 가족내부에 유보되었던 돌봄 기능을 사회화하는 대표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은 사회보장제도를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보장의 두 축으로 구분하여 종래의 소득유지 정책에 집중되었던 사회보장 시스템을 삶의 질을 향상 정책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흔히 OECD국가들 간의 비교를 통해 한국은 아직 후진적인 복지국가라 비판도 많지만, 국가의 경제규모나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복지국가임에 틀림없다. 지역 차원에서의 복지공급도 과거에 비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전국에 400개가 넘는 종합사회복지관은 개발도상국들 뿐 아니라, 이른바 복지선진국들에서조차 배우기 위해 벤치마킹하는 한국의 특징적인 지역복지 전달체계이다.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 등 단종복지관까지 합치면 한국에는 1천개의 지역기반 복지서비스 공급기관이 있는 셈이다. 사회복지관의 1년 재정규모를 대략 30억원이라고 할 때, 지역복지기관들을 통해 할당되는 재정 규모만 3조원을 넘는다.
여기에 4천개가 넘는 지역아동센터가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소관은 아니지만, 150개가 넘는 건강가정지원센터, 200여개의 다문화지원센터, 200여개의 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복지서비스 영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전국과 지역 수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사회서비스 보장이 사회보장 시스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면서, 서비스 공급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정부차원에서, 그리고 학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서비스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부의 복지재정은 늘어나고 있는데, 국민들의 삶의 질은 왜 향상되지 않는가? 복지제도는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왜 국민들은 더 많은 복지제도를 원하는가? 국가 재정을 늘려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일은 언젠가 멈출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끈임 없이 계속되어야 할 일인가? 한국의 복지제도가 본격적으로 확장되던 국민의 정부 이후 모든 정부는 복지제도의 체감도를 높이는 노력을 해왔다.
‘체감도’는 복지제도 내에 배태된 정책효과를 가리키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복지제도의 대상자들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매우 정치적인 개념이다.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복지제도가 직접 겨냥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과 아울러, 제도의 대상자들이 정책 효과를 실제로 얼마나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복지제도가 사회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가 하는 것은 각종 사회지표 분석 등을 통해서 검증할 수 있지만, 인간이 체감하는 제도의 효과는 그 자체로서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정책효과 분석만으로는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체감도가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정책분석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논의도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행복, 삶의 만족, 삶의 질 등 국가가 지향하는 사회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모두 주관적인 언어로 구성되는 것이어서, 체감도 역시 복지정책 수립과 평가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회복지행정은 복지정책을 서비스로 전환하여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복지제도의 체감도 관점에서 볼 때, 사회복지행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책의 체감도를 높이는 것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도가 상승한다는 것은 복지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함과 아울러,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그 제도들을 호의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행정의 모든 과정에 제도의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메커니즘을 장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복지제도를 통해 얻고자 하는 만족감은 무엇일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생계비를 지원받는 저소득층의 경우, 자신의 통장에 찍힌 급여이체 기록을 보면서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 잔액을 확인하면서 삶의 만족감과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을까? 복지제도의 부정수급자들을 정부가 효과적으로 적발해 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자신이 존엄한 한 인간으로 여전히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이웃으로부터 친절한 시선을 느낄 때, 설령 자신이 제도의 대상에서 탈락했다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과 이웃으로부터 관심과 배려를 받으며 때에 따라서는 자신도 작은 능력을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느낄 때 오히려 삶의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회복지행정은 서비스를 전달하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인 동시에 매우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과정이다. 모든 제도는 행정과정을 통해서만 실제로 구현된다. 사회복지행정이 인간적인 요소들을 얼마나 내부에 장착하느냐에 따라서 복지 체감도는 실제 정책효과보다 훨씬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