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가 해체설이 제기됐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일본 애니메이션, 즉 재패니메이션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73)이 총 지휘했던 지브리 스튜디오는 흥행 수입 304억엔으로 일본 역대 최고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갖고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과 함께 196억엔을 벌어들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192억엔을 기록한 ‘원령공주'(1997) 등 일본 영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겨왔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들은 자국은 물론 전세계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는 것은 물론 그 작품성도 인정받아왔다. 동화적인 스토리 라인에도 인간 내면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순수와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재패니메이션의 최고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말그대로 지브리 스튜디오는 재패니메이션의 간판이자 자존심이며 바이블이었다.
이런 지브리 스튜디오가 해체설이 제기됐다. 올 여름 일본에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추억의 마니’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스튜디오 관계자는 현지매체 라쿠텐우먼을 통해 밝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선언한 뒤 지브리 스튜디오 해체설이 나돌았고, 올 봄 스튜디오 창업 멤버인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68)가 해체 결단을 내렸다고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지브리 스튜디오 관계자는 “큰 스튜디오가 단번에 없어진다는 충격 때문에 해체 발표 타이밍을 조율하고 있는 단계다”며 “앞으로 지브리 스튜디오는 신작을 만들지 않고 저작권 관리만 맡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액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애니메이션은 지브리 자사 직원을 통해 제작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며 “‘바람이 분다’가 흥행수익 116억엔을 벌어들였으나 연간 인건비만 20억엔이다. 때문에 100억엔 이상의 수익이 나지 않으면 회사를 유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흥행수익 51억엔에 그쳤다. 지브리 스튜디오로서는 실패작을 매년 발표하며 적자를 낼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해산을 결정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물론 지브리 스튜디오 해체설에 대해 일각에선 더 지켜봐야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해체설이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물론 현지 대중문화가 받는 충격은 대단하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개봉 영화 TOP10의 1위는 물론 절반 이상이 자국 에니메이션이 차지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양새다.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실사 영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였던 80~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도 지대하다. 암울한 미래사회에 대한 고찰, 인간에 대한 고뇌 등은 향후 할리우드 영화 세계관에까지 영향을 줬고 적지 않은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숱한 명작들이 배출되며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이라는 고정관념을 없애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기설이 점차 확산됐다. 치솟는 인건비, CG로 무장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공세에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작업 현실과 나태한 대응 태도 등이 이유가 됐다. 워낙 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쏟아져나오면서 경쟁을 심화되고 인건비와 제작비는 날이 갈수록 높아갔다. 결국 수익구조가 악화되면서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훌륭한 퀄리티를 뽑아내던 재패니메이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끝내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소년 미소녀를 전면에 내세운 소위 돈이 되는 ‘아키바’ 경향의 마니아적 작품에 국한되기 시작했다. 이는 예술로서 작품으로서 인정받던 재패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새로운 명작은 나오질 않고 이에 대한 팬들의 갈증은 계속되는 리메이크로만 소화되는 형국까지 왔다.
더욱이 수익이 연일 악화되면서 애니메이션 업계의 작업 현실에 대한 어려움도 가속화됐다. 적은 임금에 고강도 노동이 계속되면서 업계를 떠나는 인재도 속출했고 또 애니메이션에 유입되야할 신진 인재들 역시 줄어들었다. 작품을 만들 ‘재능’은 사라져가고 작품을 만들 ‘돈’은 더 필요해지고 작품의 이야기도 국한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수년 내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예상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적지 않게 이야기 됐다.
결국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이자 명가인 지브리 스튜디오의 해체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이 걱정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더욱 커지는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