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 자멸의 길 재촉한다

나경택/본지 논설고문 칭찬합시다운동 중앙회 회장
나경택/본지 논설고문
칭찬합시다운동 중앙회 회장

 

“신질이 고질이 됐다. 유독 경들만 모르고 있다. 내가 하루를 더 왕위에 있으면 백성들이 하루를 더 걱정하게 된다.”

1592년 선조는 병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며 세자인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선위를 하겠다고 말했다. 외침에 대비하지 못해 백성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무능한 임금은 물러나야 한다는 상소에 대한 왕의 대답인 셈이다. 선조는 7년의 임진왜란 기간에 15차례나 왕위 파동을 일으켰지만 강력히 만류하는 신하들 덕분에 번번이 없던 얘기가 됐다.

조선시대 선위 파동은 주로 정통성을 의심받는 군주들의 정국 반전 카드로 활용됐다.

태종은 재임기간 세 차례 왕위 발언을 내 놓은 뒤 신료들의 반응을 보고 공신을 제거함으로서 권력을 강화했다.

세조는 집권 8년차인 1462년 세자에게 왕위 선언을 했으나 직계 공신들이 반대하자 거둬들이고 양위론이 타당하다고 맞장구쳤던 정창손을 직위해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조선시대에도 재신임 같은 선위 파동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는 항상 비극의 서막이었다”며 “그래도 강행하시겠다면 나를 밟고 가라”고 말했다.

혁신안이 중앙위원회에서 박수로 통과된 다음에도 문재인 대표가 대표직 재신임 투표 의사를 거두지 않자 철회를 요구하며 한 얘기다.

여기저기서 재신임 투표 철회를 건의하자 문대표는 “재신임 투표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중진들의 의견을 경청해 나가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로써 재신임을 통해 비노 비주류가 더는 자신을 흔들지 못하게 하려는 문대표 재신임을 무산시켜 문대표의 독주를 막겠다는 비노 비주류가 타협할 가능성이 생겼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측근 비리 사건이 터지자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 문대표였다. 결국 재신임 투표는 없었고 이듬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승리했다. 문대표는 재신임카드 정치를 거기서 배웠을지 모르지만 열린우리당은 지금 세상에 없다.

선결 과제가 당의 통합이요 단결이라면 다음 과제는 당의 정상화일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국회의원을 129명이나 거느린 제1야당이지만 정상적인 당이라 부르기에 민망할 만큼 무능하고 취약하다.

당장 노동시장 구조 개편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터다.

문대표는 이 길은 위기상황을 타개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어떻게 정상적인 당으로 변화시킬지 구체적인 복안을 제시해야 한다. 수권정당을 향한 본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동안 문대표는 혁신안 통과에 집중해왔지만 혁신안은 변화를 담아 낼 “그릇”에 불과하다. 이 그릇을 튼실한 내용으로 채우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집권을 위한 비전, 노선, 정책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의 타성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인물을 각계각층에서 과감히 영입해 다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제1야당이 누려온 해묵은 기득권에 안주해선 곤란하다. 당내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주류 특히 문대표 측근들이 먼저 희생하겠다는 자세가 절실하다. 제1야당의 권력투쟁은 고질병이다. 지난 8년간 17번이나 대표가 바뀐 것도 그 때문이다. 잦은 이합집산으로 다양한 계파가 존재하는 터다.

특히 선거 연패가 결정적 원인이다.

2007년 대선 패배이후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운동권 출신의 친노가 당의 지배주주로 등장하면서 온건 중도 개혁성향의 정치인들은 배겨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문대표는 자신의 의도대로 혁신안을 관철시키고 당대표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대선주자로서 갖춰야 할 리더쉽과 정치력에 대한 국민의 의문을 더욱 키웠다.

야당이 이날 스스로 드러낸 환부를 치유 수습하지 못하면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