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4일부터 시작되어 18일 5일간 열리는 三社祭는 일본의 대표적인 大祭의 하나로 본격적인 15일부터 17일까지는 전국에서 모여든 관람객으로 가득하고 淺草일대는 거리거리에 축제분위기 일색이다.
이제는 전과 달리 외국에서까지 이 대제를 관람키 위해 온 관광객으로 분위기를 돋우고 있고 신을 모시는 가마가 움직이는 거리를 따라 거리를 메우고 자동차 통행도 통제된 사람의 물결이고 淺草주변 상점들은 일년중에도 번창한 한철을 맞는다.
淺草觀光連盟, 淺草神社, 淺草神社奉贊會가 주최한 三社祭는 一之宮(東京各町渡御), 二之宮(西部各町渡御), 三之宮(南部各町渡御)등 신을 모신 가마를 멘 사람들이 3조로 나눠서 宮을 나오는 시간(오전6시)은 같지만 宮으로 들어올 때까지(19시, 20시, 19시30분)서로 다른 순로(順路)을 거쳐서 宮에 들어와 서로 만나는 광경은 관광객들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신의 가마를 메고 뒤따르는 사람의 물결을 카메라에 담기에 분주하다.
淺草寺緣起에 의하면 지금부터 1390년전경 東京 隅田川에서 어로에 정진한 橧前浜成(히노구마 노하마나리)의 두형제가 어망 속에서 한 불상을 발견 그 지역 문화인 土師眞仲知(하지노마스치)에게 하번 보도록 한 결과, 土師는 높은 聖觀音像이다.
자신도 귀의 할 곳의 깊은 불상이라며 두 사람에게 그 공덕을 순순히 말하고 자신의 저택에 堂舍를 구축해 절로하고 3인함께 존후한 聖觀音像을 제사 지내도록 했다.
이것이 淺草寺의 起原이고 후세에 이 3인이 淺草의 개척자로서 三社大權現의 존칭을 봉하고 祭祠받도록 되었다.
그것은 權現思想(仏이 神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 神仏 同体說)의 유행했던 平安末期(약800년전)일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 후 1873년(明治6년) 三社權現社의 명칭을 폐하고 현재는 淺草神社로 불리운다.
그 大祭의 神輿渡御는 江戶 제1의 荒祭로써 淺草人의 피를 들끓게 해 그 활기는 府外 제일로서 전국에 선전되었다.
또 현재의 社殿은 德川三代장군 家光가 慶安2년(1049년)건립 기부했다.
江戶초기의 대표적 權現구조건축에 수많은 재액을 피해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1963년(소화38년)과 1996년(평성8년)에 다액의 국비의 보조를 받아 건립당시의 모습으로 수복되었다
아삭사 발전의 기초를 이룩한 土師眞仲知命, 橧前浜成命, 橧前作成命의 세사람을 祭神으로 한 淺草神社(구칭 三社權現社)는 淺草의 總鎭守로서 오래전부터 지역의 두터운 신앙으로 수호되고 번성했다.
그리고 이 祭札은 三社祭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명물 대행열, 핀자자루춤, 手古춤, 組춤, 더욱 약 100基에 미치는 각 町神輿의 연합 渡御, 本社神輿의 宮의 출발, 宮에 들어옴 등 다채로운 祭事가 성황리에 끝났다.
일본전국 3대 祭는 京都의 祈園祭, 東京의 神田祭, 大阪의 天神祭들이고 江戶의 3代祭는 東京 山王祭, 神田祭. 淺草三社祭를 들고 있다.
일본 전국의 神社수는 약 85,000개 寺(절)수는 약 76,000이상이라고 하며 일본 전국의 祭의 수는 전국에서 10만-30만의 祭가 행해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섬나라로 외세의 침략이 적었던 일본은 수백년 전통을 살리고 있는듯하다.
이는 경제력으로 뒷받침되고 있고 지역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이어왔던 전통적 茶道나 도자기 관련행사도 임진왜란과 일제 36년간에 전부 소멸되고 문화재와 문화행사가 강탈당했고 경제적으로 핍박한 상황에서 행사를 복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축제에 필연적으로 사용되는 가마 위에 위용을 보인 봉황도, 백제문화의 영향으로 보이고, 가마도 얼마 전까지 결혼식이나 이조 때 벼슬한 사람이 타는 가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문화 전통은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가 일본에 살아남아 재현되고 있는 것이 도처에 발견되는 것은 민족동포들이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기민족의 말과 글, 문화전통을 잊지 않고 이어가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끈질긴 인내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해방 후 민족의 학교와 문화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도록 한 노력은 확실히 조선의 총연합회의 노력이 크게 돋보이고 민족 전통문화와 민족의식에 크게 힘을 쏟고 있음은 조선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다.
최근 시간을 우리나라 시간에 맞추어 8월15일부터 실시한 것도 민족문화의식을 살리는 일환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한국에 관심이 깊은 것은 일본문화동화정책에 괴를 같이하고 있고 근년 들어 민족학교를 세워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확고한 민족의식을 확립 하는데는 모자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의 TV에서 열고 있는 한글강좌에서도 다소 안타까운 부분을 보게 된다.
가르치고 있는 한글은 지금 한국수도인 서울말을 표준어로 하여 가르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한글의 존칭에서 “하십니까? 와 하세요?”는 전혀 다르다.
“하세요” “그래요” 등 “요”만 들어가면 존칭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 같지만 이는 한편 반말에 가까운 존칭이라는 생각이다.
외국인에게 존칭을 가르칠 때는 “하십니까? 하십시오”로 확실하게 존칭을 가르치는 것이 인식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 그래요 하세요 등을 말하면 듣는 어른들은 거북한 느낌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사회가 변했고 컴퓨터 시대니까 서울에서 많이 쓰는 그래요, 하세요, 어떠세요 등을 일반적으로 쓴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스스로 격하시키는 느낌이다.
한국사람은 일본인에게 “시데구다사이”(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때 요즘 한글을 배운 일본인은 “하세요”(시데네 시데요)라고 말하고 그것이 어른들에게 사용하는 존칭이라고 그리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존칭(극존칭)을 쓰는데 한글을 배운 일본인은 우리에게 존칭이랄까 반존칭을 쓰게 되고 존칭이 없는 것으로 알지 않겠는가?
“하세요”“주세요”“그렇게 하세요”등은 우리말의 일반적인 존칭이 아니고 일반적 반 존칭(?)이다.
만일 TV에서 가르치고 있는 반말식 즉 반쯤 존칭을 현재 서울에서 사용하는 말로 가르친다면(여성들이 애교를 담아 사용되는 반 존칭) 이점을 분명히 하고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어른들에게) 존칭은 이런 “하십니까? 하십시오, 주십시오, 주시겠습니까?”등의 존칭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어디까지나 친구나 어벙벙한 손위 경우에서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말임을 알아야 하고 여성들은 애교가 담겨 있어서 어른들에게 사용하고 있지만 서울에서도 남성들의 경우, 지금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지 못한다.
일반화되고 있는가?
서울에서 남성들도 일반화되고 있다고 해도, 어찌 되었든 우리말의 전국에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존칭은 이렇다는 것을 함께 가르치고 일본인이나 외국인들이 어른들에게 올바른 존칭을 사용토록 하는 것이 일본에서 한글강좌를 둔 의의가 있다는 생각은 나 혼자 만의 생각일까?
일본 문화 예술의 뿌리는 백제문화라 생각하며 현재까지도 일본의 문화예술 생활습관, 관습 풍속등 모든 분야에서 백제문화가 담겨있다.
우리 민족의 말과 글 , 문화는 고유전통을 계승하고 더 발전해가는 일이다.
2015년 10월 20일
本社 顧問 兼 特派員 趙相祿 sangrokjui@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