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사는 학부모 A씨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최근 본인과 아이만 인근 친척집으로 주소를 옮겼다. 집 부근 초등학교에 다문화가정 아이가 너무 많아 그나마 좀 덜한 옆 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해서다. A씨는 29일 “학업 분위기 같은 것도 있고 솔직히 (다문화 아이가 많은 곳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며 “옮기려는 학교도 다문화 아이가 많아 딱히 선호학교도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 신길동의 한 초등학교는 내년도 1학년 입학생 중 다문화 아이의 비율이 70%나 된다. 이런 이유로 이 학교는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기피학교’로 꼽힌다. 이 학교 인근에 사는 학부모 B씨는 “빌라에 입주한 중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 대단지 아파트가 마치 고립된 섬처럼 지낸다”며 “중·고교까지 학군이 좀체 좋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림동의 한 초등학교 역시 내년도 1학년 입학생이 한국인 36명, 다문화 아이 15명으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대단지 아파트여도 배정되는 학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온라인커뮤니티에선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가 있다면 A나 B아파트는 추천하지 않는다” “C단지는 다문화 아이들 많아 꺼리는 엄마들이 종종 있다” 등의 정보가 공유된다.
이처럼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 영등포구에선 입학시즌을 맞아 전학을 고민하거나 주소를 이전하는 학부모가 많다.
최근 10년간 한국 학생이 비운 자리를 중국인, 조선족 학생이 채우는 형태가 지속되면서 아예 학군이 재편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시 다문화가정 학생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다문화가정 초등학생이 가장 많은 구는 1295명의 구로구다.
영등포구(1184명)와 금천구(813명)가 나란히 2, 3위에 올랐다. 해당 3개구가 서울시 전체 다문화가정 초등학생(1만1940명)의 27.6%를 차지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이렇게 다문화 아이가 많은 구로구와 금천구, 영등포구를 대상으로 ‘이중언어 교육 강화 계획’ 발표를 예고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두 가르치길 원하는 학교를 ‘자율학교’로 지정해 교과별 수업 시수의 20% 범위 안에서 이중언어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교육청 청원게시판에는 “이중언어 특구로 지정하는 것이냐”며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시민 1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교육청은 반발 여론 탓에 계획 발표를 내년 1월로 미룬 상태다.
한국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이 급속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학부모들의 다문화가정 초등생 기피 현상은 아이들의 편협한 시각을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지만 일부 이기적인 사고가 오히려 사회공동체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일부 학부모의 이런 움직임을 무조건 매도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장은 “한국 학생의 교육적 소외가 없어야 이런 학교에 남을 유인이 생긴다”며 “방과후 수업이나 보조교사 배치 등 재정 및 인력 지원을 통해 뒤처진 교육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순 목원대 다문화센터 총괄팀장은 “학부모나 학생뿐 아니라 교육부, 교육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인식 개선 교육도 함께 이뤄지면 한국 학생 이탈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