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군소 정당들이 결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 법안을 국화에서 통과시켰다.
무기명으로 투표하자는 야당의 요구가 받아들여 지지 않은 채 “4+1”정당 소속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찬성표를 던졌다. 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고 민주국가의 틀을 허물 가능성이 큰 법이 정상적 국회 논의 과정도 없이 만들어졌다.
20대 국회와 이 법안을 주문한 문재인 정부는 무소불위의 ‘괴물’ 수사기관을 만든 역사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가결된 공수처 법안은 현 정권 핵심 관계자들에게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부랴부랴 성안됐다.
그래서 정권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다. 여권 내부에서도 검찰과 경찰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때 공수처에 알리게 돼 있는 조항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야당의 비판처럼 “문재인 정권의 범죄 은폐처이고 친문 범죄 보호처”가 아니라고 정부와 여당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 일각에선 공수처 설치에 대한 합의의 표시로 수뇌부 집단 사표 제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한다. 정군과 검찰의 정면충돌에 따른 검란이 발생할 경우 국가의 사정 중추 기관이 무너지는 비극이 발생한다. 공수처는 내년 7월에 출범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검찰이 진행하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유재주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 등을 수사할 시간은 충분히 있다. 추미애 장관은 수사팀에 대한 보복성 인사를 할 가능성이 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흔들림 없이 수사 지휘에 임하기 바란다.
향후 국회는 공수처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공수처가 검찰이나 경찰에서 수사 중 알게 된 공직자 비리 정보를 받은 과정과 수사 진행 경과에 대해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공수처장과 수사 검사들이 권력 실세들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혐의 결정을 내리면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정부 지지 세력들의 대거 입성이 예상되는 검사와 수사관들에 대한 채용 기준도 엄격히 해야 한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사법부나 검찰과 달리 공수처는 헌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 정부 출범 이후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상당수가 친여 성향의 인물들로 구성 대 헌법소원 결정에서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다.
공수처 검사의 자격 조건을 재판ㆍ수사ㆍ조사경력 10년에서 5년으로 낮춘 것도 수사의 전문성보다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나 각종 특조위 출신 인사들을 쉽게 발탁하라는 의도가 엿보인다. 공수처장 및 구성원 인선의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할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이를 외면한 채 대통령의 “친위 보위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을 잔인 “변질된 공수처”를 고집했다.
사법개혁의 대의와 순수성에 스스로 먹칠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발의된 공수처법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를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독립된 수사기관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태동했다. 하지만 “4+1” 공수처는 오히려 권력층 비리 수사에 나서는 검찰 견제에 방침이 찍혀있다.
대검은 “독소조항이 들어간 공수처는 수사기관이 아닌 정보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공수처가 사사건건 검찰을 비롯한 다른 사정 기관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우려된다.
여당과 군소 야당이 밀실 협상을 통해 선거법에 이어 공수처법까지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섭단체 대표 협상이라는 국회법상 대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잘못된 선례는 두고두고 우리 헌정사에 입법 농단으로 남을 것이다. 여당과 군소 야당의 ‘정치적’ 야합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