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역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법무부가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동의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나름 일리는 있지만 부작용이 컸다. 앞으로는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살펴보면 스토킹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보다 정교한 제도적 개선과 현장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스토킹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작년 10월 가해 남성을 고소했다.
그래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자 지난 1월 그를 다시 고소했다. 가해자의 처벌을 투 차례에 걸쳐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고소 이후 1년 가까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본질적인 문제였다.
작년 10월 가해 남성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법원은 “주거지가 일정하고 도주할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영장이 한 번 기각됐다는 이유로 2차 고소 때 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경찰도 문제였다. 300여차례 전화와 문자 메세지를 남기면서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고 만남에 응하지 않으면 협박까지 했기 때문에 언제든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피해자의 신변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타성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현재 스토킹 범죄에서 가해자를 구속해 피해자와 조기에 분리시키는 경우는 매우 적다. 작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올해 8월 말까지 스토킹 혐의로 입건된 715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254명에 불과했다.
스토킹 가해자 100명 중 96명 이상이 피해자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조건 구속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가해자의 인권만을 내세워 스토킹을 성범죄 다루듯 하는 경향이 법원과 검경에 있다.
여성 대상 범죄인 데이트 폭력 범죄 역시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검거된 가해자 7131명 중 구속된 인원은 125명애 불과했다.
법원과 검경이 여성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뭇하면 어떤 법도 어떤 대책도 효과를 볼 수 없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긴급한 우려가 있을 때 경찰이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를 명령하거나 최악의 경우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가둘 수 있는 잠정 조치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법 시행이후 9개월 동안 경찰이 신청한 잠정 조치 5734건 가운데 985건이 검찰이나 법원 단계에서 기각됐다고 한다.
이번 피해 여성의 경우 첫 고소직후 한 달 동안 신변 보호 조치를 받은 것 이외에 1년 동안 어떤 보호 조치도 받지 못했다.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던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현재까지 수사된 내용만으로는 신당역 사건이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는지 판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피해자를 특정해 지속적으로 괴롭혀 온 스트킹 범죄이자 계획범죄라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이 때문에 “이번 범죄를 어떻게 분류 하느냐보다는 대안을 찾는 게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이라는 의견에 주목해야 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법무부, 여가부, 경찰청 등 신당역 사건 관련 기관들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았다.
예방적 대처를 제대로 한 곳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들 기관을 질타했다.
경찰 등 관련 기관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사전에 범행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을 받는 건 마땅하다.
그러나 국회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스토킹 처벌법 제정 후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14건에 달한다.
여혐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이 분노를 법원과 검찰 경찰은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인식해야 한다.